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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호 목차 › 당신도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영적 변화 (5)

240호 · 2004-09-26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시86:15)

히브리어로 ‘긍휼, compassion’이라는 단어는 ‘태내, womb’라는 뜻이며,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엄마가 아기에 대해 ‘긍휼’을 느끼는 것은 그 아기가 엄마의 ‘태내’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친형제끼리 서로 ‘긍휼’을 느끼는 것은 같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어는 말해 주는 듯하다.

즉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말을 ‘하나님은 태내와 같으신 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곧 어머니와 같이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긍휼’은 생명을 주고 양육해 주며 돌보아 준다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긍휼’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영어로 ‘자비, mercy’라고 주로 해석되어 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6장 36절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나는 여기에 번역된 ‘자비’라는 단어를 ‘긍휼’이라는 말로 대치하고 싶다. 그 이유는 ‘긍휼’과 ‘자비’가 약간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자비’라는 단어는 대체로 무엇을 잘못한 사람에게나, 또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 하급의 사람에게 대하는 자세를 뜻한다. 라틴어로 ‘긍휼’은 ‘함께 느낀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뱃속에서 같이 느껴 그를 위해 행동을 취한다는 말이다. 나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이 바로 이러한 긍휼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장미를 보라. 장미가 “난 착한 사람들에게만 내 향기를 공급해 주고, 나쁜 사람들에겐 주지 않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등불이 빛을 찾는 사람이 악하다고 빛을 비춰주지 않는가? 나무를 잘 관찰해 보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설상 나무를 자르려하는 사람들에게도 차별 없이 쉴 그늘을 제공해 준다. 이것이 바로 차별 없는 사랑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는 하나님’을 닮도록 우리에게 권고하신 것이다(마5:4).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 있다. 사람들을 볼 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판단해서 볼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동을 ‘아는, knowing’ 사람과 ‘알지 못하는, ignorant’ 사람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당신도 장미와 등불, 그리고 나무에서 배우는 차별 없는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이것이 곧 긍휼이다.

미국 샌디에고에서 임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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