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느냐? (마 7:7~8)
한 목사님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은 한숨을 내리쉬며 말했습니다. “제가 아파트 단지 내에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짓는다고 하니까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는 겁니다.
교회가 생기면 시끄럽다고요. 그래서 금식도 하고, 작정기도도 했는데 아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물론 기도와 금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도 주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지요. 일단 그 아파트 내에 영향력 있는 자가 누구인지 파악하여 그를 움직여야 합니다.
모든 단체는 자체 내에 질서장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한번 그 아파트의 부녀회장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찾아가 간곡히 부탁해 보세요. 선물은 길을 평탄케 하는 법입니다.” 그 목사님은 올 때와는 다르게 환한 얼굴로 돌아갔고, 제가 충고한 대로 실천에 옮겼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선물은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뭔가 문제가 생겨 뻑뻑한 곳에는 기름을 쳐야하는 법입니다. 얼마 후 그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어 교회를 신축 중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자를 잡는 것, 이것은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사장이나 단체의 장, 군부의 수장만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물론 어디나 머리가 되는 사람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머리를 돌리는 것은 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장이 머리면 비서는 목입니다. 남편이 머리라면 아내는 그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목인 것입니다. 우두머리만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두머리로 통할 수 있는 길목이 더욱 실세(實勢)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무시하면 위로 통하는 길이 차단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 밑에 행정부와 비서진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모든 것을 보고 받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서만 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행정직원이나 비서진을 무시한다면 그 사람이 저와 연락이 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직원들이 저에게 그 사람에 대해 좋게 이야기 하겠냐는 겁니다. 당연히 저는 우리 직원들을 신임하므로 그들의 말을 참고하여 일을 처리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업가 중의 한 사람은 납품업체 사장을 만날 때 사장만 나오라고 하지 않고 가족 모두를 초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류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선물도 사장에게 하지 않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골라 사장부인에게 전하고, 아들·딸들에게 용돈도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청이 절대 다른 회사로 가지 않고 꼭 자기에게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머리를 움직이는 목을 잘 활용한 겁니다. 이것이 성공에 필요한 지혜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의 일을 고할 때 아하수에로 왕에게 직접 고하지 않았습니다. 중간 경로를 통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입은 영향력 있는 에스더를 택해 그에게 그 일을 고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만의 역모가 모두 밝혀져 반전이 일어나지 않습니까?(에스더서 참고)
회교권이 말하는 ‘알라’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잘못된 이유는 바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뵐 수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택한 선민이나 이스라엘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죽였기 때문에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가 제 아들에게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가서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고 해라.” 했는데 그들이 제 아들을 대접은 고사하고 무시했다고 합시다. 그래놓고는 저에게 무엇인가 부탁한다고 하면 제가 그 부탁을 들어주겠습니까? ‘내 아들을 무시한 것은 곧 나를 무시했으니 너도 무시 좀 당해봐라.’ 이럴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예수 없이는 하나님께로 갈 수도 없고, 예수 없이 구원에 이를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구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움직여야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분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있어야 하나님의 귓전에 우리의 기도가 아뢰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분은 하늘과 땅의 권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향력 있다는 것은 힘이 있거나 물질이 많거나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보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비굴하고 치사하게 어떻게 그 앞에 머리를 숙이랴?” 이러면서 객기를 부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처사입니다. 세 들어 사는 자가 주인에게 막 대들어 보십시오. 당장 짐 싸야 합니다. 사장에게 눈을 부릅뜨고 “맘대로 하십시오.” 해보세요. 바로 잘립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가 힘 있는 자에게 대드는 자입니다. 영향력 있는 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칼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무슨 예수?” 그러면서 큰소리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당장은 별일 없는 듯 보이나 지옥에 확실하게 한 자리 예약해 놓은 꼴입니다. 예수 앞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사다리 없이 높은 곳에 오를 수 없습니다. 길이 없이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적을 만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 된 그가 당신이 꼭 만나야 할 사람의 길이라면 얼마나 큰 낭패겠습니까? 그가 당신을 도울 사람의 목과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우리 장성 기도원에 들어가려면 마을 길목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과 사이가 나빠 길목이 차단된다면 우리는 기도원에 못 들어갑니다. ‘우리 기도원인데 왜 못 들어가?’ 하고 암만 우겨도 길이 없으니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을에 마을회관도 지어주고 화친을 청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도원 입구의 단전리 동네에 장원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트랙터로 길을 막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술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듣고 맥주 두 병을 사다주었더니 바로 해결되었습니다.
세상을 사는 지혜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아주 가장 평범한 것일 수 있고, 아주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평범하다 보니까, 너무 사소하다 보니까 실행하지 않아 고생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부르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 쉬우니까, 거저니까 안 불러 고생하고 지옥 가는 겁니다. 아마 예수 이름의 값이 억대라면 서로 사려고 줄을 서지 않을까요?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이 있습니까? 영향력 있는 자를 잡으면 찾을 수 있고, 얻을 수 있으며, 열릴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날 전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며 목회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도 바로 영향력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세상에도 접목하고, 영적인 세계에도 접목한다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복이 당신에게 분명히 임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사다리없이 높이 오를 수 없고 길없이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영향력 있는 자를 찾아라 그것이 성공의 첩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