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 때 조심하라 (창 16:1 ~16)
조선시대 임금 중 숙종이 있습니다. 숙종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장희빈입니다. 숙종의 은총을 받은 장씨는 왕자를 낳고는 희빈 자리에 오르자 기세가 등등하여 인현왕후를 모함하고 질투하여 결국 폐출시키고 맙니다.
그러나 왕후의 복권운동이 일어나고, 숙종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인현왕후를 궁에 불러들임으로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됩니다. 강등당해 울화통이 치민 장희빈에게 왕후가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들리자 장희빈은 온갖 주술과 굿으로 왕후가 속히 죽기를 빕니다. 인현왕후는 마음 고생 탓이었는지 그대로 세상을 뜨고 숙종은 자신이 죄인 같아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 장희빈은 모략이 탄로가 나 결국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인간들 누구에게나 있는 고질병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궁둥이에 뿔나는 겁니다. 좀 된 듯하면, 좀 성공하면, 좀 인정받으면 여지없이 나오는 것이 이 뿔입니다. 이 뿔은 보통 때는 궁둥이 속에 숨어 있다가 여차하면 쑥 나옵니다. 교만하고 오만방자하게 된다는 겁니다. 제가 저의 어머니께 “궁둥이에 뿔난 사람에게 제일 좋은 약이 뭡니까?” 하고 물었더니 “매가 약이지.”라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갈이 궁둥이에 뿔난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자손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자 사래의 청으로 사래의 종인 하갈을 들여 동침하게 됩니다. 조급했던 거지요. 그런데 하갈이 덜커덕 임신을 한 겁니다. 그러자 하갈이 자기 주제를 잊고 주인인 사래를 멸시했습니다. 사래는 그렇잖아도 하갈의 임신으로 마음이 심란한데 멸시까지 받으니 얼마나 울화가 치밀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람에게 바가지를 긁으니 아브람이 사래에게 마음대로 하라고 권한을 주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대가 점차 심해지자 하갈이 도망하기에 이릅니다. 하갈이 도망 길에 심신이 고달파 샘 곁에 쉬고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이르기를 “네 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해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합니다. 도망자 신세가 된 하갈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은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궁둥이에 뿔난 하갈을 보시고 위로하시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목회 19년 동안 참 다양한 성도를 접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한결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과거를 잊고 180도 달라진 사람도 있습니다. 하루 끼니를 염려하던 자가 좀 살만하면 어깨에 힘주고, 눈 아래로 깔고 다니고, 더는 ‘교회가 안 맞다’나 그러면서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은 셈입니다. 그러다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어느 날 슬며시 얼굴을 내미는 데 된통 고생한 몰골로 나타납니다. 그래도 돌아온 것만으로도 반가워 달려가면 “죄송합니다. 제가 분수를 모르고 날 뛰었었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깨달으면 되는 겁니다. 돌아왔으면 되는 겁니다. 목사인 제가 그렇게 반가운데 하나님이야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궁둥이에 뿔나면 누가 제일 고생하는 줄 압니까? 뿔난 당사자가 제일 고생합니다. 앉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걸려 다치고 그러거든요. 제가 궁둥이에 뿔나서 아팠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철산리에서 목회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성도가 5백 명이 되었습니다. 대성공이지요. 뭐하나 부족함이 없던 저는 자만심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한 20평쯤 되는 목사실을 만들고, 대형서점에서 수백만 원어치의 책을 사 장식을 하고, 서울대학교 음대생으로 조직된 성가대를 만드는 등 외관 가꾸기에 신바람이 났었습니다.
그러다 교회 내에 문제가 생겨 와장창 교회가 깨졌습니다. 제가 제 돈으로 교회를 세웠는데 쫓겨날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그때 참 회개 많이 했습니다. 목회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랬더니 광야 샘 곁에 하갈을 찾아가신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찾아오셨습니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저를 위로하시고 돕는 자를 주셔서 위기를 넘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궁둥이에 뿔났던 이초석에게 오늘날 세계 70개국을 맡겨 주사 복음을 전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저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왜 하나님은 하갈을 찾아가셨을까요? 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하갈을 찾아가 위로하시고 축복하셨을까요? 왜냐하면 하갈의 몸에 아브라함의 씨가 잉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수 모르고 뛰던 저를 찾아와 용서하시고 위로하시고 복을 주신 이유는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고, 하나님의 씨 곧 성령이 잉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좀 있다고, 좀 되었다고 헛기침하고 팔장끼다 넘어졌을 때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가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값진 피가 당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갈의 뱃속에 있던 것이 아브라함의 자식이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 그 수하에 복종하라’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힘들고 배고팠을 때 목숨 걸고 일했던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성가대로, 안내위원 자리로, 차량봉사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 순종해야 합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으면 웃시야처럼, 사울처럼 저주를 받고 말 것입니다. 웃시야는 52년 태평성대를 누린 왕인데 나라가 번성해지자 교만해져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열조의 무덤에 들어가지도 못한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으나 갈수록 교만해져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거역하고 깨닫지 못하다가 결국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네 자리로 돌아가 복종하라’는 말을 거역한 대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교만의 소지가 잠재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나온 웅덩이를 돌아보면 고개가 숙여질 것이고, 지금 내가 이룬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은혜의 단비는 산봉우리에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낮은 골짜기에 내리는 법입니다. 낮은 자,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한계와 죄악성을 깨닫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를 깨닫는 것입니다.
자꾸 목에 힘이 들어가고, 눈이 아래로 깔립니까? 궁둥이에 뿔이 나려는 증거입니다. 교만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궤계입니다. 매 맞기 전에 목에 힘 풀고, 눈을 제대로 뜹시다. 하갈처럼 궁둥이에 뿔나 광야로 쫓겨나기 전에 겸손의 띠를 허리에 동입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우리 모두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뱁새가 황새 좇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물은 골짜기에 고이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