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구란 무엇인가?
발트해의 일기는 몹시도 변덕스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비를 뿌려대는가 하면 어느 새 멈춘 비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곤 하였다. 라트비아 집회를 마치고 리가를 출발하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향해 가는 길에는 몹시도 많은 비를 뿌려댔다.
헌신적으로 우리를 위해 차량을 제공하며 모든 일을 돌보아준 아이와르는 에스토니아까지 함께 해주었다. 그가 보여준 헌신과 성실은 정말 믿는 이의 귀감이었다. 자신의 헌신을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했고 지극히 작은 일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에스토니아에서 온 그리고리 목사의 인도를 받으며 아이와르 차와 함께 두 대에 분승하여 리가를 떠난 지 약 7시간여 만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리 목사가 인도한 곳은 올드타운 중심에 위치한 아주 고풍스런 호텔이었다.
탈린도 리가와 마찬가지로 중세적 분위기의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올드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4년 만에 한번씩 개최된다는 에스토니아 국민음악축제가 시작되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참가자들과 관광객들로 도시는 활기에 넘쳐 보였다. 그러나 그 덕분에 호텔들은 만원이었고 객실료도 평소의 두 배 이상인 듯 하였다.
방을 확인하고 결정하라는 호텔 지배인의 안내로 둘러본 객실은 고풍스러운 호텔답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가격이 하루에 200에서 300달러라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은 곧 일행을 불러 도대체 왜 이런 비싼 호텔을 잡아놓은 것인지 물었다. 작년에 묵었던 숙소는 가격도 저렴했고 위치도 올드타운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리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음악축제로 벌써 1년 전부터 도시의 모든 호텔들이 예약이 끝난 상태였고 집회장에서 가까운 호텔을 찾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은 ‘우리가 호위호식하며 관광 다니는 줄 아느냐’며 당장 다른 숙소를 찾아보라고 일행에게 지시했다.
약 30분이 지나고 아이와르로부터 연락이 왔다. 도심에서 약 20분 떨어진 조용한 곳에 하루에 20달러도 채 안되는 숙소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곳이었다. 도착해보니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이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가옥을 개조하여 선교사들을 위한 숙소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방에는 2층 침대들로 6~10명이 거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고 자그마한 예배실도 보였다.
에스토니아 여인을 만나 이곳에 정착한 미국인 선교사가 이 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주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시장에 가서 음식재료들을 사다가 요리를 해서 먹으며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 환경은 외부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따라 만들어진다. 우리 마음이 풍성하면 모든 환경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참으로 조용한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 첫날 집회장에는 약 1/3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무슨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 같았다. 총회장 목사님은 정말 맨땅을 개간하는 심정으로 집회에 임해야 했다. 마른 장작이야 불만 붙이면 활활 타지만 이런 생장작을 태우려면 곱절의 힘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권세를 두려워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의 용사가 이 시대에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코틀라 야르베라는 작은 도시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꼭 세미나를 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비행기 시간을 앞두고 촉박한 일정을 쪼개가며 찾아간 교회에서 앞을 다투며 헌신적으로 돕겠다던 목사들은 이번 집회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 통역을 돕던 여인도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에 슐레프 레이발트(47세)라는 사람이 통역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그는 10여 년씩 감옥에 드나든 도둑 출신이었다.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의 약 30%가 러시아 말을 모른다하여 그리고리 목사가 준비한 통역관인데 그를 통해 실상을 들어보니 15세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러시아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총회장 목사님은 통역이 많아지면 영적 흐름이 깨지기 쉽고 집회의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러시아 통역만 세우기로 결정했다.
돕겠다던 목회자들이 모두 떨어져나가고 광고도 부족한 상태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악조건을 뛰어넘으며 집회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위해 한 이상을 보여주셨다. 포도나무는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아무도 가지를 쳐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크나큰 성령의 역사를 계획하고 계신데 이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일할 일꾼이 없는 것이었다. 오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번영을 구가하던 유럽이 기나긴 영적 수면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세상권세를 두려워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실한 믿음의 용사가 이 시대에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귀로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통일 수도 베를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나는 마을마다 마을 중심에 교회 첨탑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던 유럽이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지식의 무덤에 하나님을 가둔 채 긴 잠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그 옛날 무지한 유럽을 향해 복음의 물고를 튼 바울이 있었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잠자는 유럽을 깨울 제2의 바울이 필요하다. 닫힌 복음의 물고를 트고 거침없이 세상 앞에 나아가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열정에 찬 능력의 종들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이 닫힌 물고를 틀 것인가? 누가 복음의 돌파구를 열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문하고 계신 외침이요, 호소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