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보고
넓은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그것도 머쓱하여 거의 비워진 커피 잔을 다시 입에 대본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다. 학교 졸업 후 처음이니까 족히 이십 년은 넘은 듯하다. 그런데 막상 인사를 나누고 나니 의외로 말문이 막혔다. 오늘 상봉을 기대하면서 잠까지 설쳤는데 열리지 않는 내 입이 이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친구도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씩 웃기만 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눈의 거리와 비례하나보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말했을까? 친구와는 학창시절, 바로 거기서 시간이 멈춰져 있었다. 이십 년의 공백…. 우리는 너무 긴 시간 동안 다른 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 자신의 반려자는 자기가 거하는 반경 2km 내에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만나야 사랑도 하고 정도 들고 그러는 거란다. 사랑의 시작이 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나? 자주 만나고 보는 것을 물 위에 떨어진 두 방울의 잉크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 위에 떨어진 잉크는 점차 연해지면서 번져 나가,
나중 두 방울이 하나가 된다. 그것이 만남이 아닐까? 서로에게 동화되어 공감대가 형성되고, 점차 서로가 돈독하게 되는 것 말이다. 만남이란 이렇듯 서로를 물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길들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파란 잉크와 빨간 잉크가 만나면 보라색으로 변화하는 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파란 잉크 때문에 보라색이 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빨간 잉크 때문일까? 아니다. 두 잉크 색깔로 인하여 보라색을 띠는 것처럼, 오랜 만남은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분과 마주 앉았다. 그런데 그 분도 말이 없고, 나도 드릴 말이 없다. 서로 눈에조차 낯설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날 주님과 상견례를 치른다면 당신은 어쩔 것인가? 주님이 당신을 낯설어하고, 당신도 주님 앞에 서먹하다면 어찌할 건가? 친구야 ‘나중에 보자’ 하고 일어나면 그만이지만 주님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그 분과 자주 만나야 한다. 그 분과 만나 그 분으로 동화되고, 그 분과 하나 되고, 그 분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자주 만나 많이 이야기하여 내 속내를 다 그 분이 알고, 그 분의 마음을 내가 헤아릴 정도 되어야 그 날 얼굴을 대할 때 얼싸안고 반길 것이 아니겠는가? 주님을 늘 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