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신 하나님
저는 결혼하기 전에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도우셔서 꽃가게는 점차 왕성해져 갔습니다. 그러다 중매로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후로 점점 믿음은 약해져 가고, 결혼하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술과 담배도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결국 결혼 1년 만에 교회에 발걸음을 뒤로 하고 신앙생활의 불씨도 꺼져버렸습니다.
꽃가게를 닫고 다른 사업에 손을 대었는데 시작은 잘되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문을 닫는 처참한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그래도 저희 가족은 깨닫지 못하고 35살 되던 해 이천 약수암 이란 절을 찾아갔습니다. 그곳 주지 스님이 저를 보자마자 ‘예수쟁이가 여기 왜 왔냐’고 다그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예수쟁이가 아니라고 부인한 후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끈을 맺었습니다. 그 스님과 부자의 연을 맺은 것입니다. 스님의 도움으로 다시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광전자라는 사업체 이름을 직접 지어 주며 많은 물질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기업 부품업체로 시작한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의 부친이 간암으로 사망했는데 사업을 시작한 2년째인 37살에 동일한 증세가 제 몸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죽는구나!’ 너무나 고통스럽고 무서워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새벽에 일어나 그 고통을 잊고자 맥주를 큰 대접에 두어 사발 부어 마시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면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 사이 예수중심교회에 다니시는 분으로부터 테이프로 전도를 받았지만 버려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집사님은 계속 전도했고 문득 그 분과 함께 교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1년, 38살 생일날 다시 교회에 나갔습니다. 집나간 탕자를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온 후 기도처에서 ‘성령의 역사’를 보며 한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에서도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보며 울고 있으면 아내는 이불 속에서 신기한 듯 그 장면을 몰래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사업을 맡기고 은혜의 자리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도와 주던 스님은 아내에게 ‘며느리만큼은 예수에게 미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도 전도가 되어 목사님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을 쯤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아내는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10일 만에 완치됐고 저도 죽을 것만 같았던 몸의 고통은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스님의 도움으로 얻게 된 세상의 기업체와 물질은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저희 가족에게 임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여러 광야 과정을 통과케 하신 후 ‘윈종합건설’이란 사업체를 허락하셨습니다. 교회 성전을 짓는 일이라 어려운 시험도 많이 찾아오지만 하나님께서 철저히 간섭하고 계심을 매순간 체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영원한 탕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의 배신자를 다시 고난을 통해 방주에 들인 하나님을 찬양 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삶을 통해 잔잔히 하나님을 간증하는 작은 자로 살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