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맡겨라 (약 5:7~11)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33세라는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내 손을 관 밖으로 내어 내가 빈손으로 돌아감을 사람들이 알게 하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손에 무엇인가 쥐고 나오는 사람을 못 봤고, 죽을 때 한보따리 지고 가는 사람을 제 평생 못 봤습니다. 다 놓고 갑니다. 목숨 같았던 돈도, 기를 쓰고 얻었던 명예도 하나도 못 가져가고 다 놓고 갑니다. 그런데 인생들이 그렇게 놓고 갈 것을 위해 평생 아등바등 살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 날 누구나 예외 없이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이 손을 내밀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그때 무어라 할 겁니까? “주님, 세상을 하직할 때 다 놓고 왔는데요.”라고 썰렁한 코미디를 할 겁니까? 주님은 다시 물으실 것입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그때 알렉산더 대왕처럼 빈손을 주님께 보이면 그보다 더 큰 낭패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다 놓고 갑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일한 것은 챙겨갑니다. 주를 위해 헌신한 시간, 주를 위해 뿌린 물질, 주를 위해 흘린 땀과 수고, 주 때문에 받은 모함과 핍박의 증거와 흔적, 이것들이 우리가 주 앞에 가지고 갈 목록입니다.
좀 오래 전에 최 집사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좀 상기된 듯한 얼굴로 최 집사가 말을 꺼냈습니다. “목사님, 제가 꿈을 꾸었는데요. 꿈에 천국엘 가게 되었지 뭡니까? 제가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에 있는 너의 예금은 103,000원이다’ 이러시는 겁니다. 순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당황하여 깨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이었으니 망정이지 정말 그 날에 그랬더라면….” 그는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제는 주를 위해 물질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주님은 다 계수하고 계시니까요.” 그들 부부는 그 후로 지금까지 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피상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행에 저축하면 날로 액수가 늘어나고 이자가 느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한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 날 엄청난 것으로 보상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헌금 바구니가 오면 동냥하듯 천 원짜리 하나 덜렁 던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뭔가 크게 오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돈을 구걸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 왜 헌금을 하냐고요? 사랑은 물질을 동반하거든요.
헌금은 곧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척도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시인하는 거구요. 자식을 위해서는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짜리 과외도 서슴지 않으면서 헌금은 꼭 율곡 이이 초상화가 그려진 것만 골라내는 사람들이여! 두렙돈을 드린 과부의 심정으로 헌금하지 않으면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내게 유익이 있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 역시 그렇습니다. 목사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내 상급을 쌓는 겁니다. 그러므로 불평해서도 안 되고, 대충대충 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누구 때문에 안내위원 못하고, 누구 보기 싫어서 성가대 안 서고 그러면 누구 손해라고요? 내 손해입니다. 또 주의 일을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은 주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장이 보고 있는데 서류를 팽개치고 나가 버리면 이것은 사장을 우습게 아는 처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도중에 나 몰라라 팽개치는 자들에게 엄히 경고합니다. 주님도 언제 당신을 팽개칠지 모릅니다. 주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늘 저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쫓아옵니까? 좀 쉬어 가면서 하세요.”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과 전세계를 돌며 복음전파에 목숨을 거는 저를 위한 걱정입니다. 그러나 저는 쉴 수 없습니다. 그 날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 받을 면류관과 열 고을의 왕권을 어느 누구에게라도 빼앗길 수 없기에 동분서주하는 것입니다.
또 제가 여러분을 더 좁은 길로 몰고, 더 강도 높은 헌신을 강요하며, 끊임없이 전도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 역시 그 날 주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면류관을 쓰는 기쁨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보라서 못 입고 못 노는 것이 아니고, 제가 독해서 제 성도들을 들볶는 것이 아닙니다. 상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아는 자는 절대 나태하지 않습니다. 가치를 알면 의욕이 생성되기 때문이지요. 그 날의 상에 대한 가치를 알면 누가 헌금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주 앞에 계산하지 않을 것이고, 누가 봉사하라고 등 떠밀지 않아도 솔선수범할 것입니다. 누가 나가 전도하라고 하기 전에 달려갈 것이며, 사랑하라고 설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할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면 많은 목회자들이 제게 묻습니다.
“그렇게 자주 교회를 비우고 다녀도 문제없습니까?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가치를 가르쳤을 뿐입니다. 가치를 아는 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영어에 대한 가치를 아니까 영어를 배우려고 그렇게들 난리인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면 다이아몬드 원석으로 공기놀이를 한다니까요.
그 날이 곧 옵니다. 불원간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 날 주님은 구원자가 아니라 심판주로 공정하게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가져왔느냐?” “나는 너를 위해 피 흘려 죽었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지금 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일을 대비하지 않는 자입니다. 노후를 위해 연금과 적금을 들었다면 그는 현명한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을 위해 예비했다면 그는 더욱 지혜로운 자입니다.
내게 주어진 건강, 내게 있는 물질, 내가 가진 시간을 주께 드리면 주님은 분명 금세와 내세에 보상하실 것입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못난 자를 쓰심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주의 일을 합시다. 많은 사람 중에 나를 택해주심을 감사하며 맡은 바 일에 충성합시다. 주님 때문에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어떻습니까? 주님 때문에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 날 주님이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주님이 안아주시며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 때 너를 보았노라’ 하실 것입니다.
그 날이 없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지요. 남들처럼 주일에 놀러가기를 합니까? 향락을 즐깁니까? 꼭두새벽부터 나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안내서고, 어린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서 말씀 듣고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면 영 계산 안 서는 사람들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며, 확실히 계산될 사람들입니다. 그 날 보라고 하십시다. 만기 적금을 타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할렐루야!
가치를 알면 의욕이 샘솟고 의욕은 넘지 못할 벽이 없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라 달리는 차가 기아변속이 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