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리를 들어야 성공한다 (왕상 22:1~40)
목회초기에 저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설교를 하던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성도들 보기에 안 좋아 보였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제일 연장되신 장로님께서 저에게 “목사님 설교하실 때 주머니에 손 좀 넣지 마십시오. 보기에 영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제 설교 비디오를 보니 정말 자주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이 제가 보아도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장로님께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했더니 장로님께서 “목사님께 실례가 되지나 않을까 무척 염려가 되었기에 차일피일 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설교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닌지라 저도 모르게 어느 순간 손이 주머니에 가 있곤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바지 주머니를 꿰매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설교 중에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습니다. 장로님의 충고가 제게 약이 된 셈입니다. 만일 그 때 “감히 장로가 목사에게 충고를 합니까?” 라고 했더라면 아마 다른 누구에겐가 심한 창피를 당했을 겁니다. 밤 가시 피하다가는 고슴도치를 만나는 법이거든요.
충고란 사실 하는 사람도 어렵고, 듣는 사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옛말에도 ‘양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입에 쓰다고 약을 안 먹으면 병이 치료되지 않듯, 듣기 싫다고 남의 충언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영원히 고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쓴 소리, 곧 충고는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어디 남의 자식에게 충고합니까? 그냥 ‘뉘 집 자식인지 쯧쯧…’ 하면 됩니다. 남의 성도에게 간섭합니까? 그냥 ‘왜 저러나’하면 그만입니다. 충고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라못을 놓고 싸움을 하려고 할 때입니다. 시드기야를 비롯한 400명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전쟁을 하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선지자 미가야만은 전쟁에 나가면 왕은 죽임을 당할 것이니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합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예언을 한 적이 없는 마가야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감옥에 넣고 출정합니다. 갔다 와서 보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갔다 와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전쟁터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미가야도 다른 예언자처럼 아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합은 아마 음부에서 ‘미가야의 말을 들을 걸’하며 엄청 후회했을 겁니다.
입에 달다고 초콜릿만 먹어 보세요. 이빨만 썩는 것이 아닙니다. 로큰롤의 왕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의 원인이 바로 초콜릿이었습니다. 육체도 단 것만을 먹으면 죽거늘 하물며 영혼이야 말하나마나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주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저주의 말이 더 길고, 성경 곳곳에 징계의 말뿐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참 사람도 형형색색이구나’ 했습니다. 어찌 그것을 저주로 받아들이냐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충고요, 권고의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친다, 이렇게 하면 병난다’ 이런 겁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가 아니겠습니까? 그럼 잘못 가는데도 ‘그래 잘 간다’ 해야 사랑입니까? 사랑은 공의입니다.
어느 사형을 기다리는 중죄인이 있었습니다. 처형 날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부모를 상면할 수 있도록 선처를 하자 어미가 찾아왔습니다. 그의 어미가 눈물을 흘리며 죄수인 아들에게 얼굴을 대자 이 아들이 갑자기 어미에게 달려들어 어미의 귀를 깨물었습니다. 삽시간에 면회실은 난리가 났습니다. 감시원이 달려들어 뜯어 말리자 아들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말했습니다. “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내가 어릴 때 남의 것을 도적질하고 들어와도 어머니는 나를 야단치지 않았고, 내가 남을 때리고 들어와도 ‘너만 안 다쳤으면 됐다’고 했어요. 그때 나를 야단쳤더라면 내가 오늘날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통곡했습니다.
세상은 징계보다 칭찬이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와 초달을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칭찬은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흥분제와 같습니다. 깨고 나면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칭찬하면 낙하산 준비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잠27:21).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압니까? 자존심을 밟아가면서도 옳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자입니다. 주위에 달콤한 말만 하는 사람만 가진 사람은 마치 우둔한 곰과 같습니다. 곰에게서 쓸개즙을 뺄 때 어떡합니까? 입에 달콤한 사탕을 물리고 빨대를 꽂아 쓸개즙을 빼내는 겁니다. 곰은 사탕 먹느라고 아무 것도 모르잖습니까? 귀에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꾼들은 당신의 재산을, 명예를, 신앙을 도적질하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잠28:23).
저도 가끔 성도들을 경책할 때가 있습니다. 무척 조심스럽지요. 그러나 그 영혼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반응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사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라고 하나 또 어떤 사람은 “목사가 성도를 까네.”라고 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목사가 성도를 까서 뭐 합니까? 얼마나 기도하고 얻은 성돈데 까겠습니까? 잘 되라고 그러는 겁니다. 싫은 소리 들을 줄 알면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원래 상처에 약을 바르면 그때는 더 아픈 겁니다.
다윗은 시편에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라고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질타에 다윗은 침상을 젖도록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아내를 취한 엄청난 죄를 지었으나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끝까지 노인들의 말을 무시하다 나라 대부분을 빼앗기는 참변을 낳았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전도사가 어디를 심방가자는 겁니다. 어디냐고 하니까 가보면 안다고 하며, 그 사람이 헌금을 제일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갔더니 여자들이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술집 주인인 성도와 종업원 모두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하다 성령의 감동 따라 “술집해서 헌금할 거면 하지 마십시오. 어느 부모가 몸 팔아 온 돈으로 호위호식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와 버렸습니다. 전도사 얼굴이 노랗게 질렸던 것을 슬쩍 보았으나 목사로서 할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성도가 찾아왔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지만 저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신 분이 없었습니다. 이제 술집을 정리하고 새 사업을 하겠습니다.” 약발이 받은 겁니다. 이처럼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입니다. 책망을 받아도 목이 곧은 자는 패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당신에게 누군가 쓴 소리를 하거든 감사함으로 나를 돌아보십시오. 누군가 당신에게 책망을 하거든 그를 좇아가 친구를 삼으십시오. 쓴 소리, 그것은 곧 사랑의 음성입니다. 할렐루야.
밥이 육체의 보약이듯 충언은 영혼의 보약이다
양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