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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당신의 문제입니까? (요 11:1~53)

198호 · 2003-12-11

‘당신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는 곧 ‘당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와 상통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과 상담할 때면 다양한 기도제목들을 들고 옵니다. 지금껏 “저는 기도 제목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성도들이 당면한 문제로 인하여 고민하고, 낙담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문제를 잘 못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문제, 즉 가족의 문제, 육체적인 문제, 물질적인 문제 등은 제대로 된 문제의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야기되고 표출된 문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리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지척의 거리였으나 이틀을 유한 후 그들에게 당도합니다. 이 자매들은 좀 더 일찍 오시지 않은 예수님께 야속함을 표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을 옮겨 놓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지 사흘이 지나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과 얼굴을 동인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마리다와 마리아의 문제는 하나 밖에 없는 오라버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예수가 당도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문제의 시각이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 입니다. 그럼 바랄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능으로나 지식으로 지혜로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틀을 머무시다 가신 이유는 바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을 심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환난, 절대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믿음을 확인하시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꾀와 지식을 버리고 오직 주만 의지하고, 그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이 지낸 후 보잘 것 없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대탈출을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는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힘과 능력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으로 낙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믿음이 갈팡질팡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이 고난 중에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으나 그를 유심히 보고 계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변질되지 않는 믿음이 결국 갑절의 축복을 받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더디 대답하시는 것은 믿음의 연단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침묵기간 동안 침륜에 빠져 허우적거리라는 것이 아니라 비비람에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 나무가 되라는 것입니다. 침묵 기간 중에 인내를 배우며, 인간의 것들을 다 빼고 하나님의 것으로 정화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것과 다르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것보다 깊고 넓습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이것도 문제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이란 믿음이 없다는 말이나 진배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돌을 말씀으로 옮기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다에게 옮기라고 하신 것은 순종 즉 행함을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종을 통하여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그 종이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우리 마음밭에 있는 불신(不信)의 돌무더기를 없애야 합니다. 불신앙, 불순종을 우리 안에서 제해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는 견고한 진, 이것은 인간의 잣대로 하나님을 재는 것이며, 인간의 지식 속에 하나님을 묻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불순종하게 하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굴려 버려야 죽은 삶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며, 이 진을 파해야 죽었던 사업, 죽었던 육체, 죽었던 교회, 죽었던 가정이 살아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으나 돌은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룰 수 없으나 주님 앞에 물고기와 보리떡을 내어 놓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30배, 60배, 100배의 증산을 꾀할 수 없으나 그의 말씀에 의지하여 땅에 씨를 뿌릴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행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때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많은 사람을 먹이실 것이며, 흔들어 눌러 넘치는 축복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움직이는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큰 믿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사르밧의 과부에게 가장 큰 문제를 가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믿음을 강요했습니다. 남은 기름과 가루로 떡을 만들어 오는 움직이는 믿음을 요구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순종하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가뭄이 다하도록 가루와 기름이 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곁가지를 붙들고 있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매일 흔들리는 바닷물결 같은 우왕좌왕하는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맛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것은 안 돼.” “이것은 절대 불가능 해.” 라고 스스로 진단합니다. 이는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이 된 격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안 된다고 뿌린 것은 안 되게끔 하십니다. 그 분은 믿음을 초월하지 않으시며, 들은 대로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全知全能)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부소부재(無所不在)하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임을 인정합니까? 그렇다면 그 분을 믿고 의지합시다. 그리고 그의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또 조급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때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가족의 문제, 육체의 문제, 물질적인 문제, 교회의 문제를 하나님은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믿고 순종하면 말입니다.

환경 때문에 울지 말고 당신 믿음 때문에 우십시오. 가족과 사업문제로 울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치 못한 것을 회개하십시오. 교회와 국가 문제로 울기 전에 내게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이처럼 믿고 행할 때 여리고 같은 문제가 무너질 것이며, 삶 속에 홍해는 갈라질 것입니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당신의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할렐루야.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원인을 알면 답이 나온다

해일은 바다를 정화하고 태풍은 나무 뿌리를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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