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소 게임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계시던 학교 관사에 가면 시소가 있었다.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소였는데 저녁시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면 할아버지는 여러 손주들 중 하나씩을 돌려 한 쪽에 앉게 하시고, 당신은 맞은편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할아버지께서 좀 더 어린 손주와 시소에 앉을 때에는 중심턱에서 가까운 곳에 앉아 다리로 시소를 움직이시고, 덩치가 있는 손주는 좀 더 멀리 앉아 중심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들과 이야기를 나누듯 하나님도 우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정도에 따라 시소 중심턱에 가까이 앉아 당신의 다리로 시소를 움직이시기도 하시며, 좀 더 자란 신앙에는 중간쯤 앉아 시소를 타신다.
그리고 신앙이 성숙된 자에게는 시이소 끝에 앉아 덜거덕거릴 정도로 시소를 움직이기도 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 칭함을 받아 시소를 즐겼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도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시소 끝에 앉아 타다보면 조금 엉덩이도 아프고, 다리도 아플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성했기에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장성한 자에게 시험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의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이다.
늘 하나님의 다리로 버텨주는 단계에 살면 문제가 있다. 세월이 가면 자라야 정상인 것이다. 키도 자라야 하고 덩치도 커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폭과 깊이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릴 적에는 부모가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먼 나라 동화 속 이야기며, 옛날 이야기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다. 그러나 자라면서는 아이들의 일상 재잘거림이 부모를 재미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이긴 이야기며, 사랑을 나눈 이야기며, 복음을 전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 넉넉히 자란 자식과 마주 시소를 즐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신다.
오늘 저녁 식사 후에 가까운 놀이터로 나가 아이들과 시소를 즐겨보며 하나님을 생각하라. 어린 아이와 시소를 타는 방법과 장성한 자와의 시소 타는 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깨달아 다시 한 번 당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