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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삼하 12:1~23)

197호 · 2003-12-03

요즈음은 주요건물이나 거리에는 거의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범죄를 막는 수단으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각도에 설치된 카메라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다 체크하고 있어 범죄예방에 퍽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과학의 발달로 인공위성을 띄워 세계 곳곳의 작은 골짜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cctv도 사각지대가 있고, 인공위성의 위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완전범죄를 이룬 줄 알았습니다. 다윗은 그의 신복 우리아의 처를 취하고 잉태하자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 그의 아내와 동침케 하려 했으나 충직한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안일을 꾀할 수 없다하여 이를 거부합니다. 이에 난감해진 다윗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장을 세워 그를 전사하게 합니다. 누가 보아도 다윗의 완전한 각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전쟁터의 군인들도 눈치 채지 못한 완전범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잊은 게 있었습니다.

자신을 늘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잊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의 죄를 꾸짖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비유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침상을 젖는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죄는 사함을 받으나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입니다. 이 악행으로 다윗은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의 아들 압살롬과 자신의 첩이 백주에 동침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교훈이 되어 이 후의 다윗의 삶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진실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코람데오)의 삶, 그것이 믿는 자의 마음가짐입니다. 이것이 만일 너무 광대하여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가상해봅시다. 누군가 당신을 늘 주시하고 있다면 당신의 언행이 어떨지를 말입니다.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면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살고, 슬쩍 악을 행하고, 본이 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하물며 하나님이 당신을 늘 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면 죄를 물 마시듯, 악을 불 뿜듯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존재는 인정하나 실체를 무시하는 믿음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찌 몰래카메라의 능력은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눈은 의심하고 있습니까? 분명 그 분은 우리 하나하나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에 들어가 신임을 받게 됩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위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틈을 기해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요.” 요셉은 이 일로 누명을 뒤집어쓰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나님을 기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일에 침묵하고 계셨으나 그를 심중에 두셨고 때가 되매 그를 신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30세에 국무총리의 자리까지 앉히셨던 것입니다. 분명 그 집 안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만이 있었기에 요셉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무엇이든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보고 계심을 믿었고,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15:3).

우리가 여행을 가면 좀 느슨해지고, 조금 흐트러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행지에서는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왜 악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죄와 더불어 사는 줄 압니까?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 분은 성령으로 당신 가운데 함께 계셔 당신의 걸음을 세시며, 당신의 심령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그 분의 눈을 피할 수 있으며, 그 분의 귀에 아니 들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듣고 계십니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조롱의 편지를 들고 하나님 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 열왕기하 19장에 나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이에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들었노라’(왕하15:20). 또 히스시야가 병이 들어 수명이 다함을 알고 눈물로 통곡하자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15년 수명을 연장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 큰 것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지구가 회전하나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물고기에게 물은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관심은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감시자가 아니라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감시하다 적발되면 벌하시려는 분이 아니라 미리 죄와 악으로부터 예방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저의 아들들이 어릴 적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정말 창피해서 못 살겠어요. 성도들 앞에서 춤 좀 그만 추고, 찬송도 좀 폼 나게 부르세요.”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에 아이들은 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때 제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거야. 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란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면 사람의 종이지.” 정말 저는 매순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섰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을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까지 보고 계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 거짓을 고하다가 저주를 받은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는 성령을 속인 결과입니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과부가 몰래 넣은 두렙돈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고넬료가 몰래 구제한 것도 하나님은 보셨고, 나다니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예수님께서 먼저 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지금 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도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세상에도 얼렁뚱땅 살지 말고 진실 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산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139:2,3).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간구를 듣고 계시며 계획하고 계십니다. 은밀히 행하는 모든 일도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을 주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며 바르게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복을 주실 것이며, 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다 기름과 물이 섞일 수 있겠는가

진리는 절대 타협될 수 없는 것 진리는 다수결에 좌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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