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막힌 것을 뚫어라 (엡 4:1~6)
노인층에게 치명적인 병은 뇌졸중입니다. 이는 혈관 내에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병입니다. 혈관 내에 불필요한 물질인 콜레스테롤이 지나치게 많아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고 저해하기 때문에 발병된다고 합니다.
뇌졸중은 일어나면 뇌의 손상으로 인해 많은 기능이 제구실을 못하게 되어 마비 상태가 되고, 기억력이나 어휘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콜레스테롤이 적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혈액순환이란 이처럼 우리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수구도 막히면 일상의 어려움을 줍니다. 물이 빠지지 않으면 거기에 벌레가 끼고, 악취가 나며, 주변까지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주부들이 나름대로 방책을 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순환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교류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반도를 휴전선이 가로막은 지 5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이 우리민족 사이를 이질감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념은 물론 언어도 많은 차이를 보였고, 감정 또한 다른 경향을 띠게 했습니다. 그동안 가로막혔던 담이 너무 높았던 결과입니다.
에덴에 살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 죄를 지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가로막는 담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직면할 수 있는 기회와 통로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뵐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긴 하나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사 자신을 죽이심으로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담을 한꺼번에 모두 허무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4~16).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를 청산하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을 넓게 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대로(大路)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막힌 것이 없이 뻥 뚫려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류가 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이에 담을 설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쌓은 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드려 담을 허셨건만, 우리가 이제 하나님과의 담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은 세상의 것들입니다. 썩어질 세상의 것들이 담을 이루고 있습니다. 육신의 일을 추구하고, 안일을 꾀하며,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 즉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과 사이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육신이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의 담이 높음을 뜻하는 것이며, 다시 원수됨을 뜻합니다. 담이 높으면 그늘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담이 높으면 인생에 그늘이 집니다. 빛이 들어오지 못하니 인생이 어둡고, 도적이 끓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담을 높이면 인생이 늘 음지 가운데서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혈액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뇌졸중이 오듯, 하나님과의 교류가 단절되면 인생의 뇌졸중이 찾아옵니다. 인생이 마비되고, 삶이 어눌해지며, 기도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목숨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분리, 결연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수구가 막히면 벌레가 끼고, 냄새가 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류가 없으면 우리가 인생이 귀신의 밥이 되고, 인생이 향기롭지 못하고 냄새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이 추하고, 궁색한 냄새로 진동할 것입니다. 또한 남북교류가 오랫동안 없었기에 우리가 서로 이질감을 느끼듯이, 하나님과 교류가 없으면 세상의 것에 취하여 나중 하나님의 것에 반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사이에 있는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 담은 우리가 만든 것이므로 우리가 허물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며,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향하면 그는 의로우사 우리를 다시 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담을 허물어 버리면 우리의 삶이 양지로 변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견고한 진을 파하면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찾아오사 우리 삶 속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종적인 사건 즉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회복뿐 아니라 횡적인 사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선 자는 횡적인 관계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 가족,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율법의 완성을 뜻합니다.
내 이웃에 향한 담을 허무는 것도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먼저 사랑을 전하고, 먼저 마음을 전하면 사랑은 전염되고 확산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낮아지면 담이 무너집니다. 편견을 버리고 이해하면 담이 허물어집니다. 상대가 담을 허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담을 무너뜨리면 상대가 보이고, 상대가 이해되고, 상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막힌 것을 뚫읍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기도로 무장하고, 늘 성령에 충만하면 담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을 늘 뵐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항상 뵈올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으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내가 그 분에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것들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늘의 창고가 열리고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허무세요. 또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시다. 성령의 열매가 이웃과의 관계에 주렁주렁 열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줍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아니하면 열매는 자연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또 이웃과 담을 허무는 데에 망치나 불도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결단하는 순간 견고하고 높은 담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오늘이 결단의 시기입니다. 마음을 운전할 수 있는 자는 자신뿐입니다. 하나님도 사람의 마음을 초월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결단하십시다. 하나님과 쌓은 담을 헐고 그에게로 달려갑시다. 그래서 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시냇가 심은 나무처럼 만사에 형통한 삶을 누립시다. 할렐루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예수만이 생명의 길이 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