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기 전에 깨달아라 (대하 12:1 ~ 12)
‘이 곳에 들어가면 위험하니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지뢰가 매설된 위험지대에 가면 이런 경고문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고문을 보고도 이를 무시하거나 ‘설마’하고 의구심을 갖고 들어가다 재앙을 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야 경고문의 위력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경고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라’ 이며, 다른 하나는 ‘하지 말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 법도 무시되는 순간 제재가 가해집니다. 하나님의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법 안에 순종할 때, 그들의 세력은 주변국들을 압도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고 타락할 때, 하나님께서는 주변 열강들을 들어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그런 경우입니다. 르호보암이 즉위 3년이 지나며 그 세력이 강해지자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스스로를 높이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무관히 보지 않으시고 애굽 왕 시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쓸어버리시려 했습니다. 이에 놀라 이스라엘 방백과 왕이 스스로 겸비함을 갖추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왕들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알게 하기 위해 시삭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이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영적 거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사람의 지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도 세상의 지혜나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점차 오만방자하고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사무엘 대신 번제를 드리는 중죄를 지었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아낌없이 다 살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좋은 것들을 취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하거나 매를 맞는 이유도 돌아보면 반드시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사에도 그 답이 있으며, 사울의 인생사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준행하지 않으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때 하나님은 회초리를 들어 때리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경종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분의 은총을 입었으나 여전히 방종과 타락과 탈선을 일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정욕대로 내버려두십니다.
다윗도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침상이 젖도록 회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잃어야 했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맞기 전에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맞으면 아프고 상처도 남게 됩니다.
이삭은 전무후무한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평안했습니다. 이는 완벽한 순종의 결과입니다. 그는 모리아산에서 이미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삭의 평생을 넘치도록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포로가 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로 풀무 불에 던져질 지경에 이르렀으나 그들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들어 그들을 보호하셨고, 그들을 적진 위에서 꽃 피우게 하셨던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변치 않는 믿음이 그를 사자굴 속에서 살렸고, 그를 더욱 높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며,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힘과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기를 즐기며, 하나님 이외의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냉정히 돌아서 버리십니다.
하나님이 때리실 때는 아직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남의 자식은 때리지 않습니다. 내 자식이니까 잘 되라고 부모가 때리는 겁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가 잘 못된 길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잘 되라고 회초리를 드시는 것입니다. 때리시는 이는 싸매기도 하십니다.
당신의 사업이 한 대 맞았습니까? 원인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 안에 순종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당신의 가정에도 하나님의 회초리가 있었습니까? 당신의 신앙을 돌아보십시오. 성경에 비추어 잘 못된 행실과 신앙을 바로 잡고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바로 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시 당신의 기업과 가정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창대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이 늘 음지에서 허덕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빛을 가로 막고 있는 원인을 제거하십시오. 음지가 양지가 되는 길은 빛을 차단하는 요소를 제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하게 하는 저해요소를 잘라내면 분명 당신의 인생에 태양이 비췰 것입니다.
개도 한 번 맞은 구멍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잘 못을 반복하는 자는 개보다 못한 자입니다. 이는 돼지에 비교됩니다. 돼지는 목욕을 시켜놔도 토한 자리에 도로 눕지 않습니까? 그래서 돼지에게는 진주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불순종을 반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가당치 않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들어온 자는 하나님의 법대로 가야 합니다.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논리나 학술로 하나님을 분석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미쁘게 보시사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어본 적이 없고, 마음으로 조차 생각지 못한 놀랍고 큰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말 잘 듣는 자식은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게 되고, 뭐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듭니다. 하나님도 순종하는 자녀에게 복에 복을 더해주시며, 지경에 지경을 넓혀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로다’(시119:165). 하나님의 법 안에 거하면 장애물이 없어 남들보다 빠르게 갈 수 있으며,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론과 지식이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걸림돌을 뽑아내세요.
맞기 전에 깨닫는 것이 지혜요, 복입니다.
맞으면 맞는 우리도 아프고, 때리시는 이의 마음도 아픕니다. 말씀을 늘 상고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법인지,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바랍니다. 회초리를 들기 전에 어서 하나님께 돌아가 다윗처럼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징계는 사랑의 표현이다 징계할 때 감사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