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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어머니의 기도가 저를 변화시켰어요

179호 · 2003-07-30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 혼자 교회에 다니셨는데, 어느 날인가 할머니께서 집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길 점을 보았는데 십자가가 보인다며, 한 집안에 종교가 둘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겁니다. 그 날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1985), 어머니께서는 승진이 되신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오게 되시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예수중심교회 전도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은혜도 커졌지만 이 때부터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가까운 교회를 다니는 것도 못마땅해 하시는 아버지였는데 서울 집에서 왕복으로 4시간이나 걸리는 인천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니시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신 것이지요. 아버지께서는 말로 설득하시다가 통하지 않자 때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타협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어머니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가정에 웃음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저는 대학생활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가정에 평화가 없었기에 저는 더욱 밖으로 겉돌았고 세상과 짝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그런 저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 너 계속 그러면 좋지 않아.”

저는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눈꺼풀이 잘려져 나가 너덜거릴 정도로 다쳤는데 신기하게도 눈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어머니께서는 저를 처음 보자마자 “잘됐다~, 감사해라.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대학부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대학부 생활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매일 기도회에, 놀기 좋은 토요일에도 예배를 드려야했으니까요. 그렇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스스로 기도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로 군 입대, 그러나 자대 배치를 받던 첫날부터 저에게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주일 아침에 고참병장이 대청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고참들이 청소하는데 새파란 막내인 제가 교회 간다고 말하면 허락할 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고참에게 말하니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주먹밖에 없더군요.

그래도 끝까지 가야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핍박을 받으며 가게 된 교회에서 저는 성령님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시간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맞아가면서도 교회를 나가는 어머니가 이런 위로를 받았구나.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구나.’

6개월이 지나도록 핍박이 이어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참고 인내하는 저를 높여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일병 때 군종이 되어 교회에 마음 놓고 나갈 수 있었으며 교회 주일학교 교사도 맡겨 주셨지요. 그뿐 아니라 신우회 부장 집사님이신 기무대대장님의 배려로 일주일에 3번, 수요예배, 토요예배, 주일예배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군 생활은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180도 역전되었습니다.

제대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를 핍박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매주는 아니지만 교회에 나가고 계셨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화되어 계셨습니다. 10년 세월이 넘게 계속된 핍박 속에서도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신 어머니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바로 변함없는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대학부 송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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