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지배하면 스타가 된다 (빌 4:10~13)
환경이란 나를 둘러싸고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 또는 사회적 조건이나 형편을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환경은 외부적인 조건이나 형편보다는 내가 누구 안에 있느냐,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되곤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현재의 상황이나 조건에 관계없이 그곳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환경이란 실제적 상황보다는 그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많은 위인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업적이 결코 외부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많이 봅니다. 오히려 그들을 둘러싼 역경의 그림자들과 싸우며 이겨낸 결과가 그들의 성공적 인생을 일구어내곤 하였습니다. 신체적 장애와 싸우고 물질적 가난과 싸우고 폭압적 권력과 싸우며 도저히 이루기 힘든 업적들을 일구어낸 많은 인물들을 대하면서 그들은 환경의 노예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린 자들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귀머거리라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불후의 명작을 작곡해 낸 독일의 베토벤이나 소 한 마리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거부가 된 정주영 씨, 그리고 폭압적인 영국의 탄압 아래서도 비폭력이란 숭고한 정신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낸 간디 같은 사람들을 보면 비극적 환경은 오히려 그들의 삶을 폭발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준 동력이 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비단 이러한 놀라운 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일상의 노력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환경을 뛰어넘고 지배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미소, 긍정적인 말 한 마디, 사랑의 선물, 그리고 더 나아가 방안에 새로 놓인 꽃병 하나가 칙칙한 환경을 살만한, 즐거운 환경으로 바꿔줍니다. 오늘 이 강단에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을 하니 얼마나 마음이 넉넉해집니까! 밋밋한 배경보다 영상도 더욱 아름답게 나올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이끌려 마음까지 빼앗기는 자세로는 결코 환경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마음만은 담대하게 다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결코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 분이 징계하시는 이유는 오직 깨닫고 돌이켜 바른 길로 가기를 소망하시는 것이요, 그 분이 우리를 환난에 집어넣는 이유는 우리를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시킬 때 둥지에서 떨어뜨리는 무지막지한 시도와 같습니다. 새끼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날 수 없습니다. 그저 공포 속에 땅으로 추락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발버둥을 자꾸 치다보면 날개에 근육이 발달하여 어느 새 창공을 날아오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분명 메시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에게 닥치는 고난 앞에 불평과 불만, 절망으로 소일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 곤고한 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그 역경을 적극적으로 돌파하는 사람만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풀려고 밤을 새워가며 끙끙 앓는 노력 가운데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발전과 도약으로 이끌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에게 오는 시련이나 문제를 징검다리 삼는 여유와 자신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금 기도원에서는 전 교역자, 신학생들이 상주하며 숙소건축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을 상고하고 강단에서 설교하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것이 주업이던 자들이 생전 해보지 못했던 막일을 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겹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기술자가 모자라 기술까지 배워야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벌써 4개월이 가까워 가는 현 시점에서 바라보면 도대체 할 수 있을까 하던 일들을 너끈히 해내고 있는 것을 볼 때 정말 하고자 하는 자에게 능력주시고 힘주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잠잠히 그 동안의 과정을 되짚으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교역자들에게 맡기시는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낄 만큼 벅찬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이 지나다보니 어느 새 이전보다 더욱 강건해진 스스로를 느끼게 됩니다. 사실 교역자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체력을 다질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 힘든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단을 향하신 큰 계획이 있으신데 이런 허약한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더욱 강건한 육체로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든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교회에 핍박이 거셀 때 교회는 더욱 부흥했습니다. 외국의 목회자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고 첫 번째로 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체 교회 건물도 없이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1991년 서울에 입성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체육관을 빌려 사용해왔습니다. 인천성전도 임대로 쓰는 것입니다. 교회 건축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에 충만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기쁨으로 달려온 결과, 세계 70여 개국에 비디오 및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위성과 인터넷을 통하여 전국과 전세계에 복음을 실어 나르는 교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교회를 배우고자 초청이 이어지고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옵니다. 우리가 가진 조건이나 외부적 환경에 좌우되었더라면 오늘의 영광은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며 성령에 충만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며 달려온 결과입니다.
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했고, 사도 바울, 요셉, 욥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환경을 지배하였습니다. 환경을 결정하는 요소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란 내가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나님 밖에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외부적인 것이 호조건 하에 있더라도 하나님 밖에 있다면 그것은 바람 앞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악조건 하에 있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평강과 안식을 누립니다.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무엇 하나 평안한 것이 없고, 흡족한 것이 없으며, 선한 것이 드문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조건을 허락하신 까닭은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 안에 들어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그가 주시는 능력으로 이 조건들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승리하고 성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광야 같은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고 계십니까? 광야에서 울지 말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면 당신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되고, 죽은 자 같으나 생명을 얻은 자가 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가 되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바람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 깊은 뜻을 깨닫고 그에게 순종함을 배우세요. 오늘 말씀을 깨닫고 환경에 지배당하는 노예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영적 스타가 되십시오. 할렐루야!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고 핍박 속에 교회는 부흥 성장한다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말라 고난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