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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행복의 원천은 가정이다 (시 127~128편)

167호 · 2003-05-09

당신의 행복지수는 얼마입니까? 또한 당신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돈으로 행복을 사셨습니까? 권력으로 행복을 잡으셨습니까? 아니면 명예로 행복을 얻으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면, 돈을 많이 벌면, 혹은 명예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나 막상 그것에 도달하면 거기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권력으로 잡히는 것이 아니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력으로 행복을 누리는 거라면 행복은 권력자의 점유물이 될 것이며,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이라면 적게 가진 사람들은 행복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고, 명예로 얻는 것이라면 특권층의 소유물이 될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의 샘은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행복의 원천은 바로 우리 가정 안에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선조들이 가르친 것이 바로 부동(不動)의 법칙(法則)인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과 척도는 가정이 얼마나 바로 서 있느냐, 가족 간의 사랑이 얼마나 돈독하냐에 있습니다. 가정은 반석입니다. 반석이 바로 서지 않으면 그 위에 공들여 쌓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석이 튼튼하면 풍파가 몰려와도 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가정이 잘 구비되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있으면 성공과 행복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의 가정에 질서와 사랑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돈 벌기에 바쁜 부모와 대학 입시로 공부하기에 바쁜 자녀들, 그들은 한 지붕 아래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들일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갈등 앞에 가정이 깨지고, 작은 시련 앞에 가족이 서로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피를 나눈 사랑의 공동 운명체입니다. 고로 서로 다독이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어떤 경우에도 함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독처하는 아담에게 하와를 주셔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는 이 가정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추구하게 하여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악한 마귀는 가정을 깨뜨리려고 유혹합니다. 행복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 가족을 흩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가정,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가정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6,7)’.

하나님 말씀에는 가정의 윤리와 도리와 교육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어릴 때부터 습관화하면 가정의 타락은 없고, 가정의 붕괴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남편이 세상과 짝할 리 없으며, 아내가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가정을 무너뜨릴 리 없으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된 자녀가 죄악의 길로 갈 리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세우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 답을 보고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엡6: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이 공식대로 살면 가정은 아름답고 평안하며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부모를 보고 아이들은 닮아갑니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면 자식들은 자연스럽게 이것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최고의 교육기관이며, 최초의 교육기관인 것입니다. 매일 부부가 아이 앞에서 싸우거나,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것을 본 아이는 꼭 그렇게 합니다. 사람은 본 것 이상을 초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아이를 사육하느냐 양육하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인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십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실패란 단어는 없습니다. 단지 경험을 했을 뿐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다시 가정을 재건하면 됩니다. 행복의 샘을 막고 있는 이끼를 제하여 버리면 그곳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막 같았던 가정에 오아시스가 샘솟을 것입니다. 행복의 저해요소인 불신과 무관심을 제하여 버리면 행복의 샘은 솟구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물이 흘러 행복의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바다 안에 갖가지 물고기가 있듯이 가정의 행복 속에 부귀와 명예가 따르는 것입니다.

오장육부가 튼튼해야 사지가 튼튼한 법입니다. 즉 보이지 않는 가정이 튼튼해야 사회적 입지가 튼튼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가정을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문제가 생긴 후 울어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점검 부재 현상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의 뒷북만 치게 할 뿐입니다. 내 아이들은 곁길로 나가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초달을 아끼지 말고 말씀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어릴 때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힘이 들게 됩니다. 또한 남편이 세상과 짝하고 있지 않나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음녀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유혹이 너무 많습니다. 남편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도록 아내들이 따뜻함을 보여야 합니다. 부드러운 것이 진정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의 젖가슴은 어린 아이의 안식처요, 아내의 가슴은 남편의 안식처라고 하지 않습니까!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자리에서, 아내는 아내의 자리에서, 부모는 부모의 위치를 지키면서, 자녀는 자녀의 본분을 다하면서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신뢰와 사랑의 매개체를 통하여 하나씩 쌓아가는 성(城)인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방심으로 가정은 깨질 수 있습니다. 바늘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도 물이 새는 것처럼 작은 불신으로 가정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지진같이 큰 것으로 가정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작은 요소를 던짐으로 그것으로 쐐기를 박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가족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여 마귀의 궤계를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큰 집에서 육선(肉饍)이 가득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된장찌개 하나 놓고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찬송이 가득한 집이 정말 행복한 가정입니다. 행복이란 내가 먼저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작품인 것입니다. 명작이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행복도 거저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여 얻는 값진 결실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훈삼고 실천하여 만민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오장육부가 튼튼해야 사지가 튼튼하듯 튼튼한 가정 위에 국가가 바로 선다

작은 구멍이 새서 둑이 무너지듯 작은 불신이 가정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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