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치료하신다니까요!
그 때 금요철야예배에 가려고 준비 중이던 아내(김보옥)가 전화를 받았는데, 제 아내는 병원보다는 먼저 철야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매달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서울 가톨릭 교사협의회’ 부회장직까지 맡고 있던 저는 91년 여름, 잠실학생체육관의 철야예배에서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두 차례 듣고 변화되어 가톨릭의 두터운 옷을 벗었습니다. 그 후 추석을 앞둔 가을철 주일예배 때, ‘제사는 우상숭배’라는 말씀을 듣고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즉시 결단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제 가정에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해에 고려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큰아들이 졸업 전에 대기업 인턴사원으로 채용되었고, 이듬해에는 제가 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들은 중학교 교사로 채용되었고 국가기술자 기사 1급 시험에 무려 세 가지나 합격하였으며, 나아가 교원으로 근무하는 중에 국비장학생으로 교원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후 지난해 2월, 서울대 박사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또한 몇 해 후 사위는 은행지점장으로 승진하였고, 딸은 여고에 취직하여 분당에 좋은 아파트를 마련하는 등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쏟아부어주신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맑았던 하늘이 오후 5시경 갑자기 흐려지며 비가 올 것만 같아, 창문을 닫고 교장실을 나섰습니다. 서울 노원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1998년 5월 1일(금요일) 저녁 퇴근길의 일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차를 학교에 두고 지하철로 퇴근하던 습관대로 걸어서 전철역 입구에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려고 우르르 달려들던 청년들에게 밀려 저는 계단 아래로 내닫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발 아래에 엎어진 서너 살 먹은 아이를 밟지 않으려고 뛰어 넘다가 균형을 잃고 그만 계단에 넘어지면서 뒷머리를 크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온통 머리에 피를 흘리며 뇌진탕으로 쓰러져 있는 저를 역무원이 발견하고 119에 연락하여 상계동 백병원의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병원에서는 제 주머니 속에 있는 공무원증을 보고 학교를 통해 저희 집으로 연락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완전 혼수상태로 생명이 위독하니 보호자가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말입니다. 그 때 금요철야예배에 가려고 준비 중이던 아내(김보옥)가 전화를 받았는데, 제 아내는 병원보다는 먼저 철야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매달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바로 88체육관으로 달려간 아내는 하나님께 남편을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새벽 3시경, 병원에 당도했을 때는 응급조치만 한 뒤 신경외과로 유명한 다른 병원으로 저를 옮긴 후였답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진탕으로 인한 뇌 내 출혈이 극심하여 생명이 위독합니다. 좌측의 어깨뼈(쇄골)가 골절되고 우측 후두부 출혈성 뇌좌상이 심하여 살아도 기억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라며 심각하게 말하더랍니다. 그렇지만 금요철야예배에 달려가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한 아내의 간절한 기도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만 사흘이 되던 날, 꿈속에서 만난 총회장 목사님께서 “이제 집으로 가보세요.”라고 말씀하시며 제 머리에서 손을 떼시고는 어디론가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저는 옆에서 기도하고 있는 아내에게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면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고 합니다. 꿈속에서 총회장님을 뵌 그 때부터 기억이 살아나며 회복이 빨라져, 서울 삼성병원에서 그 위험한 뇌수술도 무사히 마치었고, 점차로 완쾌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완전히 부러진 어깨의 쇄골이 어긋났기 때문에 다시 수술로 바로 잡아 보조대를 대고 핀을 박아 접골한 후, 일정기간 동안 물리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수술하지 않고도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정상으로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아내와 함께 한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맡은 직분에 충성할 것을 사랑하는 하나님께 약속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