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지난주 우리 교회 한 집사님께 큰 감동을 받았다. 하루는 집사님께서 운행하시는 교회 25인승 버스가 교회에 없기에 여쭤보니, 수리할 일이 있어 잠시 가지고 나가셨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평소에 하고 싶었던 창문 유리 썬팅과 수리할 부분들을 교회에 부담주지 않고 당신의 돈으로 하고 싶으셨단다. 평소 열심히 봉사하시며 교회 차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늘 고마운 마음이 많았다. 요즘 부쩍 신앙의 변화가 돋보여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생각지 못한 큰 감동까지 주셨다.
이 일이 있기 두 달 전, 나는 설교 도중에 교회 성물들을 아끼며 봉사하는 분들을 호명하며 참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칭찬하며 축복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 이후부터 집사님께서 눈에 띄게 흥에 겨워 봉사를 하셨고 평소 뜸하셨던 기도회에 빠짐없이 동참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간증하신다. 기도한 것보다 넘치게 물질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교회 성물에 다시 물질을 되돌려 드린 것이다.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적지 않은 큰돈을 애써 스스로 감당하신 모습에 얼마나 눈물 나도록 감사한지 할 말을 잃었다.
언젠가 총회장 목사님께서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다. 설교란 소수를 통해 다수를 살리고 전염시키는 것이며, 그래야 교회가 점점 생기를 얻는다고 하셨다. 강단에서는 근본적으로 청중을 살리는 설교를 지향하라는 말씀이셨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남은 알곡까지 상하지 않으려면, 꿀통을 발로 차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리라!
이것이 큰 교회 목사님들의 성공의 공통점일까?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목회 성공 노하우를 간증으로 들은 적이 있다. 그분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길, 늘 소수의 충성스런 성도들을 타깃 삼아 설교했노라 하신다. 잘하는 이들을 더욱 북돋아 주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그렇다고 간주하며 믿은 결과를 열매로 거두었다 하신다.
실제로 의롭지도 않은 우리를, 십자가 때문에 의롭다고 ‘간주’(칭의, 稱義)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멋지게 변화될 내 이웃의 모습을 상상하고 간주하며 나도 그렇게 축복하는 것이리라!
송직화 목사
기도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타 교단 목사님 한 분이 우리교회 목사님을 따라 목회자와 장로님이 토요일마다 모여 기도하는 곳에 왔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심령들이 뜨거운 우리 교회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도착한 목사님은 우리 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통성으로 몇 시간 기도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녁에 방향이 같아 이시대 목사님 차를 타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이 이시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예수중심교회의 부흥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시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보신 대로입니다. 기도가 그 답입니다.” 다시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시대 목사님이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 안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기도하면 다 되는데, 안 하고 고통당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 아닙니까?”
기도, 모든 것의 해결책입니다.
크리스천이 지나간 자리
전자제품 설치를 마치고, 설치 기사님에게 과일과 음료를 대접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대접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아, 대뜸 총회장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초석 목사님, 대단한 분이시죠!” 반가우면서도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을 아세요?” 그의 눈은 벽에 걸려 있는 교회 달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타 교단의 성도라는 소개와 더불어, 과거 총회장 목사님의 집회에서 은혜받았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목사님과 우리 교회에 대해 좋은 말들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교회의 교패와 달력을 보고 예수중심교회 성도의 집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작은 친절로 우리 교회에 대해 좋은 기억을 하나 더 남겼으니 말입니다.
한겨울의 어느 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관리인이 한가득 쌓여있는 쓰레기더미를 힘겹게 치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시설물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입주한 세대가 꽤 있어서 임시로 분리수거 장소를 정해 놓았는데, 제대로 분리가 되지 않아 수거업체에서 계속 거부했나 봅니다. 입주민들이 잘못한 일인데, 추운 날씨에 관리인 혼자 반나절은 고생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얼른 장갑을 끼고 나가서 그를 도왔습니다. 몹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던 그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기독교인이시죠?”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와 마주치면 인사하거나 가끔 과일과 간식을 드렸을 뿐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으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가족과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다른 관리인이 듣고, ‘00동 00호 주민은 기독교인’이라며 말과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나 봅니다. 참 다행입니다. 그를 도왔던 일이 그들 사이에서 또 대화의 주제가 되어 예수님과 교회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졌을 테니 말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온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것이다. 정말로 네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느냐고… (중략)….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다 그리했노란 말을 듣고 감사의 기도로 인생을 마치길 원한다.”
교회 신문(2022. 1. 30)에 실린 총회장 목사님의 시에 깊은 감명을 받고, “누군가 저에게 목사님의 삶이 그러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목사님의 삶이 진실로 그러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답하겠습니다.”라고 존경을 가득 담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쉽게 크리스천을 알아보고, 크리스천의 삶이 어떠한지 주목합니다. 크리스천이 일탈을 저지르면, 그가 진정한 크리스천인지, 이름뿐인 크리스천인지 상관없이 언론에서 더 강력하게 비난하고, 세상 사람들도 더 심하게 손가락질하며 저런 사람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목사님은 그런 사람에게 “나를 보고, 예수 믿으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윤리·도덕적으로 흠이 없으시고, 그것을 넘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셨기에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14). 진정한 크리스천은 그 정체성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드러난 삶이기에 다른 이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고, 인내해야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솔직히 힘겹고 어려운 순간도 있지만, 그럴 때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겨납니다.
사람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세월이 흘러가면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에서 희미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흐려지더라도 그의 착한 행실을 추억하며 예수님을 떠올릴 테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의 걸음걸음마다 예수님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 예수님이 보시고 늘 기뻐하시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정명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