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편안하기를 포기한 자들의 몫이다(눅13:6~9)
우리 때 학교 교훈이나 급훈 중에 가장 많은 것이 ‘근면, 성실’이었습니다. 생각나시죠? 요즘 애들에게는 이 말이 참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만, 이 말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 아닙니까. ‘부지런할 근(勤), 힘쓸 면(勉),’ 즉 근면이란 부지런히 일에 힘쓰는 것이요, ‘정성 성(誠), 열매 실(實)’, 성실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일진대 그런 자가 성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한 시대에 맥을 그은 인물들이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의 선친들을 보면 하나같이 편안함을 거부하고 포기한 자들이었습니다. 놀 것 다 놀고, 먹을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성공한다면야 누가 편안하기를 거부하고 싶겠습니까? 솔직히 누가 부지런을 떨겠습니까? 신나게 놀고, 편히 살지요. 그러나 성경은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의 결과가 어떤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실래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부지런과 게으름이 마치 빛과 어두움처럼 상극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놀고 싶지만, 쉬고 싶지만 자원하여 편안하기를 거부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도 일찍이 편안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편안한 길을 버리고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셨는데, 그의 종이라 하는 자가 편안하기를 구한다면 그분의 종이라 떳떳하게 말할 수 없지요. 세상 학문의 박사가 되는 것도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애써야 이루는 일이거늘, 명장도 전쟁에 이기기 위해 잠을 잊고 전략 전술을 꾀하거늘 주의 종이 안일을 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루 네 시간 이상 자본 일이 없고,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 두 끼 먹으며 기도했고, 주경야독의 심정으로 부지런히 배우고 노력했습니다. 부지런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73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배운 게 없어서, 가진 게 없어서 성공은 그림의 떡이라고요.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큰 자산이 있는데, 그것이 부지런입니다. 도망자 신세였던 야곱에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얍삽한 외삼촌 밑에서도 부지런이라는 무기는 통했던 것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철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면 다 풀린다’고 제자들에게 부지런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옳은 가르침입니다. 부지런은 성공을 위한 확실한 만능키입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 갈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운동하면 건강해지고요, 부지런히 연구하면 실적이 올라가고, 부지런히 소 떼와 양 떼를 보살피면 가축이 늘어나고, 부지런히 기도하면 응답이 오고, 부지런히 전도하면 하늘의 상이 늘어나고, 부지런히 목회하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부지런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부지런히)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부지런히)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노느라, 자느라 안 해놓고 핑계를 댑니다. 어느 주인이 각자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곧 부지런히 나가 장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자 노한 주인이 핑계나 대고 있는 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며 바깥 어둔 데로 내어 쫓으라고 했습니다(마25:30).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로 비유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게을러서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를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눅19:27)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악하다’고 했고, ‘원수’라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게으름이 그저 좀 느린 성격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왜냐? 게으름은 육은 물론이고, 영혼도 죽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은 악이요, 악은 곧 마귀입니다. 즉 게으름은 마귀의 전매특허입니다. 악한 것들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저 천천히 하라고, 내일 하라고 합니다. 그러다 주인이 도착하는 날까지 아무것도 안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가난하게 만들고, 천국에도 못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마을 건너에 아주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농번기 때 어머니가 그 사람들에게 일하러 오라고 전하라고 해서 가면요, 해가 중천인데도 자고 있습니다. 그들 말인즉 논도 없고, 갈아야 할 밭도 없어 잔다고 했습니다. 핑계입니다. 논도 없고, 밭도 없으니 더 부지런해야지요.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서 품삯이라도 받아야지요. 그래서 논 한 마지기라도 사야지요.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3년 동안 열매를 못 맺는 무화과나무를 주인이 찍어버리라고 하자 과원지기가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말하며 1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동안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요, 1년만 부지런히 노력해도 과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1년만 부지런을 떨어도 소출을 낼 수 있습니다. 1년만 부지런히 기도해보세요. 1년만 부지런히 책을 읽어보세요. 1년만 부지런히 운동해보세요. 분명한 결과가 나옵니다. 1년을 부지런 떨다 보면 부지런한 것이 습관이 되어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에디슨은 무슨 일을 할 때 시계를 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부지런하다는 것은 집중력과 상통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손발보다 머리를 부지런히 쓰는 것이 더욱 유익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쇳덩어리로 엿을 바꿔 먹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낫이나 호미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바늘을 만들어 팔아 몇십 배의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머리가 부지런히 돌아가야만 가능하고, 어떤 일에 집중할 때 가능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게으른 것을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삶에 지금까지 소출이 없었던 것은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삶에 가시덤불이 가득했던 것도 게을러서입니다.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자가 장애인이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인이 진짜 장애인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중에 제일 큰 장애인입니다. 게으름을 떨쳐내지 못하면 비참한 운명이 됩니다. 그러니 ‘~ 때문에’라고 변명하지 말고, ‘게으른 나’와 싸워 이기세요. 그러면 행운도, 성공도 당신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을 부식시킨다
게으른 천재보다
성실한 사람이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