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내 삶과 신앙의 암이다(수1:5~9)
“이자가 두려우면 사업하지 말고, 이혼이 두려우면 결혼을 말고, 외국어가 두렵다면 유학이나 이민 가지 말고, 물이 두려우면 수영을 아예 말아라.”
제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두려워하면 그것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려움이란 내 삶을 죽이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366번이나 담대하라고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았을 때 하나님은 제게 오늘의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이 말씀은 모세가 죽은 뒤 대권을 물려받은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은 이미 제 목회 길이 순탄치 않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사실 그 말씀이 있었기에 물 없는 사막, 눈 덮인 산야 같은 목회 36년을 올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고, 무수한 핍박도 받았고, 최루탄으로, 몽둥이로, 칼로, 권총으로 협박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경찰, 검찰에 조사를 받기도 했고, KGB에 끌려가기도 했고, 재판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을 붙잡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7~8).
두려워 떨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목회 초 부천의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귀신을 쫓는데, 귀신이 제게 ‘야! 너는 못 쫓아.’ 그러는 겁니다. 순간 덜컥했습니다. 겁이 났지요. 그런데 성령께서 제 입술을 사용하사 “그래, 난 못 쫓아. 근데 너 예수 알아?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 했더니 귀신이 나가고 그 사람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습니다. 주의 종들이 왜 귀신을 못 쫓는지 압니까? 두려워서입니다. 귀신이 안 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니 두려운 겁니다. 그러나 자고로 명령권자가 책임도 지는 법, 예수 이름으로 명했으니 명령권자인 예수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우리는 그 명령대로 집행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저는 ‘두려움이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요, 이는 곧 믿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재벌의 자녀들을 보세요. 지나칠 정도로 당당하고 담대합디다. 세상의 왕자들도 어디 가나 담대합디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시요, 이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작은 것에 놀라고 두려워서 떤다면 말이 됩니까? 재력가 앞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 앞에서, 명예가 있는 사람 앞에서 눈치나 슬슬 보고 두려워한다면 됩니까? 그건 아버지의 능력을 못 믿는 것이니 믿음이 없는 것이요,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의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이니 불신앙인 겁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습니까?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모세가 바로 앞에서 담대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다윗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하게 나가 골리앗과 싸운 것이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었기에 사자굴에 담대히 들어간 것이고,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담대하게 들어간 것도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1~3).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백성들을 독려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려움을 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해서 영적 정전사태를 만듭니다. 우리의 삶을 깜깜하게 만들어서 별 것 아닌 것에 놀라고 두렵게 하여 마침내는 우리를 공포에 질려 죽게 합니다. 그러나 아시죠? 불만 켜면 어두움은 물러나는 것을요. 영의 불, 곧 성령의 불만 밝히면 어두움의 주관자인 악한 마귀는 도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두려움을 주는 악한 것들은 혼비백산하고 물러갈 것입니다. 어린 아이 앞에서도 두려워했던 베드로가 순교까지 하는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풍랑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실패의 늪에 빠지게도 됩니다. 달리다 보면 태클도 들어옵니다. 두렵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거기서 주저앉는다면 말이 됩니까? 손흥민이 태클을 무서워했다면 올해 푸스카스 상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악조건 속에서 진행된 인도 뉴델리 집회에서는 영어와 인도어로 3자 통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통역관들이 주변의 여건에 겁먹고 두려워하며 통역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정신 차려! 링 위에 올라온 자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링 위에 오른 선수와 같습니다. 싸우다 보면 한 대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다운될 수도 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땅에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 제단에 하늘의 불을 끌어내린 엘리야도 시퍼런 이세벨의 칼날에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구한 적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기세에 다운된 겁니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담대하게 다시 일어날 때 홍수환 선수처럼 4전 5기의 신화를 쓰는 유명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하무인인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나 예수님께 최대의 치욕을 당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말입니다.
담대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정직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세무서에서 나와도, 경찰이 와도 내가 깨끗하면 당당할 수 있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의 죄를 들이대며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늘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셉처럼요. 혹 죄를 지었다면 두려워 떨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와 죄를 고해야 합니다.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처럼,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침상이 젖도록 회개한 다윗처럼요.
여러분, 도전하고 모험해야 성공합니다. 조련사들이 수족관의 상어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쳐서 두려움을 주는 것처럼, 악한 마귀는 우리 앞에 두려움이란 벽을 쳐서 도전과 모험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이 벽을 제거하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독려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하시며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도 말고 담대하게 아름다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2021년은 성취하는 한 해요, 정상에 오르는 한 해가 되게 합시다. 할렐루야!
두려워하는 자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
정직하고 분명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