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00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영생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히11:8~16)

1007호 · 2019-06-16

지난 8일, 전주예수중심교회를 담임하던 황해선 목사가 소천했습니다. 너무 일찍 간 것이 안타깝고, 또 남겨진 유족들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소천하기 바로 전에 저는 황 목사와 마지막 통화에서 “먼저 가 있어라. 나중에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갑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습니다. 누구 말처럼 익은 감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땡감도 떨어지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은 우리는 곧 본향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황 목사는 그토록 그리고 소망하던 영광의 문, 영생의 문 안에 들어갔습니다. 고통이 없고, 아픔도 없고, 근심도 없는 그곳, 더욱이 우리 주님이 계신 그곳으로 갔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물론 잠시 헤어지는 아픔은 있지요. 그립겠지요. 그러나 마냥 슬퍼할 일만이 아닌 것은 늘 사모하던 본향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간 것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6).

여러분도 늘 영생의 소망을 품고 살고 계시지요? 그 소망 때문에 주일에 쉬지 않고 교회 나오고, 밤에 안 자고 철야예배 나오는 거 아닙니까? 그럼요, 우리는 늘 영생의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일을 만나든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고 고백한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 힘든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까? 오직 그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기 때문에 고난으로 점철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차 갈 그 나라, 장차 받을 상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난이 어떠하든 대수롭지 않았던 것입니다(롬8:18). 우리의 마음에도 그 소망으로 꿈틀거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자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좋은 진주를 산 자의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고 덜 좋은 것을 버릴 줄 아는 참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 더 좋은 세상과 영생의 소망을 알았기에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 안에서 발견되려 함과 같이 말입니다(빌3:8~9). 정말 좋은 진주를 보고도, 밭에 감추인 보화를 보고도 덜 좋은 자신의 것을 내던지지 못하는 자는 바보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을 얻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었는데도 자신의 돈을 놓지 못한 부자청년이 그런 사람입니다(마19:16~22).

여러분, 이 세상은 나그네 길입니다. 잠시 사는 인생입니다. 130년을 산 야곱도 나그네 인생임을 고백했습니다(창47:9). 인생은 잠깐 피는 풀의 꽃과 같고, 풀도 꽃도 다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벧전1:24). 그러나 내세는 이생과 시간의 비교가 불가한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의 일로 울고불고 합니까? 이생의 것 때문에 영원한 세상의 것을 못 잡습니까? 언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요, 땡감도 떨어지는 데요.

본향을 붙잡아야합니다. 보이는 것을 놓고 보이지 않는 것을 얻어야 합니다. 팥죽을 못 먹어서 허기가 지고, 굶어죽어도 장자권은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울, 아간, 발람 선지자처럼 이 세상에 열중하면 본향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가다 영원한 소망을 놓친 겁니다. 또 솔로몬처럼 임종을 앞두고 깨달아도 너무 늦습니다. 내세를 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바보가 되지 말고 예수를 믿는 시점부터, 지금부터라도 사후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잘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고난과 고통의 길이요 인내해야 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입성이라는 소망을 든든히 붙잡았더라면 그들은 그 고난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소망을 잃어버리자 원망불평하며 차라리 종살이하던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평안이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길을 평야 같은 넓은 길이 아님을 예언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이 좁고 협착한 길을 잘 통과하는 방법은 영생의 소망을 품고 가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11:35~40). 믿음의 전당에 오른 믿음의 선친들이 걸어간 신앙의 길은 이처럼 우리가 받는 핍박과 고난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것은 영생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믿음의 선친이 받은 고난보다 아주 경한 고난에도 잘 넘어지고 침륜에 빠질까요?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이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하듯 영혼의 건강도 잘 먹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아무것이나 먹는 게 아니라 아주 좋은 것을 먹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4:4). 또 그 분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이 솟아나게 하는 샘물을 마셔야 건강해집니다

(요4:14). 자기 몸도 못 추스르는 자가 꿈이든 비전인들 갖겠습니까? 영혼도 강건해야 영생의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니까 작은 일에도 넘어지고, 불평하고, 더는 애굽으로 돌아가자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상고하세요. 쉬지 말고 기도하세요. 그래야 영혼의 맷집이 세져서 웬만한 것에 끄떡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장수하는 게 왜 복인 줄 압니까? 오래 살수록 영생의 나라에 쌓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영생을 위하여 많이 쌓는 자는 영생의 것을 많이 거두게 됩니다. 심은 만큼 나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 나라 법이기에 그렇습니다. 세상 것만 추구하면서 영생을 논하고, 상을 논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부터, 예수를 믿는 시점부터 그 날을 위해 그 나라에 차근차근 쌓는 자들이 됩시다. 또한 우리 삶의 축이 예수가 되게 합시다. 세상을 축 삼아 교회는 가끔 나들이하는 곳으로 여기면 영생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가 축이 될 때 데마처럼 세상으로 나가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그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날에 받을 면류관과 상을 바라다보며 오늘 열심히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삽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할렐루야!

오늘의 계란을 먹지 말고

내일의 암탉을 키워라

미래 가치 있는 일에

네 인생을 투자하라

100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교단소식
성경에서 배운다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