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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록 머리 둘 곳 없으나
언젠가 저 너머 파주에서 연락이 왔다. 내게 안수를 받은 이봉재 목사가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한
터에, 나보고 ‘부흥회를 좀 인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해달라는 데야 내 어찌 마다할
손가! 내 진정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라면 저 지글거리는 지옥 어귀까지라도 내려갈 판이다.
그래 신이 나서 그 길을 한달음에 내달렸다.
그런데 마중 나온 그를 가만 보자니, 행색이 이만저만 말이 아니다. 교회를 개척한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님을 내 익히 체험한 바이지만, 초췌해진 얼굴과 앙상한 모습을 대하자니 적잖이 안쓰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래도 자기를 안수해준 스승이요, 게다가 부흥회 강사로 모셨으니 잘 대접해야한다고
방을 잡는다, 식사를 대접한다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 저으기 흐뭇하기만 하고…….
그러나 그냥 저 하는 대로 내버려두자니 그도 못할 짓이다. 개척 교회 고만한 살림에 무슨 호강
받아 보겠다고 넙죽넙죽 주는 대로 다 받아 누릴까. 마다하는 그를 달래고 달래 억지로 그가 기거한다는
옥탑 단칸방에 짐을 풀었다. 옹색한 세간들을 대하려니 ‘백 번도 더 잘하였다’ 생각이 든다.
못내 몸둘 바 몰라 하는 그에 대고 한바탕 너털웃음 지으며 ‘얼굴 색이 왜 그러는가’고 근간을
묻자니, 요 근래 잠만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온 몸이 욱씬거린단다.
그래 그런가 하여 귀신을 쫓고 기도해주고는 나도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아니 이럴 수가!
아침에 일어나자니 웬일인지 나 또한 머리가 무겁고 깨질 듯 하지않은가! ‘이거 귀신이 단단히
역사하나보다’고 생각하고는 귀신을 쫓는데 좀체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거 참 야단났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 하러 이곳 파주까지 왔는데, 강사라는 사람이 아파 누워있게 생겼으니
이제 어쩌란 말인가!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 부흥회를 인도하고는 또 하루를 지내는데 이젠 숫제
눈앞이 핑핑돌고, 서 있자니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줄줄 흘러대는 데야 이게 도무지 어찌된 일인가
싶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부르짖어 목놓아 울뿐이다.
있는 것 다 버리고 걸어온 길이잖은가! 저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한 나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주님이 잘 아시지 않겠나! 단지 주님만을 따르리라 부르짖을 뿐이다. 지나온 날들을
더듬어보자니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억지로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 밤을 새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눅
9:18) “머리 둘 곳이 없어도 좋아요.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그때, 예의 그 음성이 또
한번 또렷이 들려오는데 “그래, 그렇다면 만물이 다 네 꺼다(고전 3:21).”고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그간의 모든 괴로움과 아픔은 일순간에 다 날아가 버린다. 침잠이 가라앉은 마음
너머로 다시금 샘솟듯 감당 못할 새 힘이 솟아오른다.
그렇다. 하나님이시다. 종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시려 그 마음 어루만지시려 약속의 말씀을
보내사 나를 위로하시고, 굳건케 하시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무래도
좋았다. 사람들이 핍박한대도 좋고, 비록 머리 둘 곳이 없어 이곳 저곳 정처 없이 헤메이게 될지라도
좋다. 그 길이 어떤 길이건 그분 가신 그 길을 뒤따라가리라. 나중에야 몸을 피폐하게 했던 이유가
연탄가스 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귀신만 쫓고 있었으니….
하마터면 연탄가스 때문에 제자 목사가 명을 달리 하게 될 뻔했다. 성령께서 나를 여관으로 보내지
아니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나 보다. 그 목사를 살리고 나로 더욱 기도에 전념케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한데, 그런 중에도 종을 버리지 않고 피할
길을 내어주시니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목사님은 정말 여한이 없겠습니다’라고들
한다.
교회도 안정되었지, 전도단이며 신학교, 기도원,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교회를 바라보자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참 한이 많다. 목사가 한이 많다고 하니
이상하게 보이는가? 그러나 내겐 무시 못할 두 가지 한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한강 물 퍼다 쓰듯
영혼 살리는데 돈 좀 펑펑 쓰며 일해봤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게로 오는 아픈 사람들이
나를 통해 모두가 고침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이 되어 밤낮 내 마음을 짓눌러 나로
곤고케 한다. 비록 내가 머리 둘 곳 없는 몸이 된대도 좋다. 갈갈이 찢기워 산화된대도 좋다.
나를 통해 예수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더 나타날 수만 있다면, 내가 존재했음으로 이 세계에 드리워진
어둠이 조금이나마 걷히울 수만 있다면….
- 이초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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