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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성경 속 세상

993호 · 2019-03-10
아름다운 인생

성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사전 답사를 위한 준비를 했고, 덕분에 성경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성경을 더 깊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욕심을 조금 더 내서 성지 예루살렘을 다녀올 생각에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예배를 드리던 중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만 성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성지라는 생각에서였다.

같은 의미로 이렇게도 생각한다. 설교 예화로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조지 뮬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얼마나 이루어지는지 체크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은 붙잡은 말씀도 이루어지지만 붙잡지 않은 말씀들도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만이 성지가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이 성지이듯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이미 성경은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말씀대로 살 때 그것이 축복과 은혜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안에서 말씀대로 살아갈 때 받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중고등부 교사로서 맡겨진 학생들에게 성경 말씀이 사실이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지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오늘도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과는 구별된 삶, 나의 힘과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고,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우리 삶 속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나타날 것이다.

이은성 성도

es2563@naver.com

연단을 넘어

최선(最善)

‘헬조선’, ‘N포세대’, ‘경기불황’, 불합리한 현실과 처우…. 이런 여러 이야기들은 지금이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자세히 묘사해준다. 그런데 이런 여러 문제들에 대한 반응들이 조금 이상하다. 대상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원망하고 혐오하며 미워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분위기이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선과 악이 존재하는데, 그 양 끝에는 ‘최악’이 있고 반대쪽에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최선’이 있다. 원망과 혐오, 미움과 분열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뒤에 악한 사단의 거짓말이 있다. 그 거짓말은 바로 ‘나는 피해자다’란 생각이다. 일단 ‘나는 피해자다’란 생각이 들면 반드시 ‘가해자’가 생긴다. 가해자가 지목되면 가능한 모든 고통들만 모아 상대를 더 악하게 묘사하여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가지, ‘원망’뿐. 내 삶의 모든 고통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며 게으르고 나태한 자기연민에 빠진다. “내가 이렇게 불행한건 이 나라, 저 정부, 저 남자, 저 여자, 내 부모 때문이야.” 한번 이 맛을 들이면 마스터키를 가진 것처럼 모든 상황에서 손쉽게 내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삶의 진실일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일까?

완벽한 환경은 평생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힘을 주셨다는 것이다. 자유는 주홍빛 같은 죄악 앞에서 회개하여 거듭나게 하는 힘이다. 골리앗 앞에서 고개를 들고 나의 물맷돌을 집어던지는 힘이다. 형제들에게 팔리고 누명을 뒤집어써도 찬양하며 충성하는 힘이다. 천만인이 둘러싸도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세상은 결단코 우리 소망의 날개를 묶을 수 없다. 내 스스로 내 날개를 꺾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을지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어제보다 한걸음 더 아름다운 풍경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모든 상황 속에서 마음을 지키고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하자. 하나님은 반드시 뿌린 대로 갚아주신다. 당장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묵묵히 나아가자. 하나님의 자녀에겐 언제나 최선이 어울린다.

이은총 전도사

성도편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초석 목사님

이 목사님을 처음 만난 지도 어언 30년이 지났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것이 제 일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세상(비진리)과 절대 타협지 않고 꿋꿋이 푯대만을 바라보고 가시는 모습은 항상 제 마음의 지표가 되었고,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이는 들어가고 몸과 마음이 연약한 가운데 있지만, 이 목사님의 그 믿음을 본받아 다시 일어나 달음질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초석 목사님!

아직도 30년 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님 사택에 처음 들어갔을 때, 빵구난 제 양말을 보시더니 서슴지 않고 서랍을 열어 새 양말을 꺼내주셨던 광경을 말입니다. 그때, 목사님의 출중한 능력과 화려한 언변뿐만이 아니라 인간미(애정)가 넘치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번에 문안을 올리면서 의미 없는 연하장을 대신하여 양말을 몇 켤레 보내드립니다.

날이 따듯해지면 저의 영혼과 육체도 더욱 강건해지겠지요. 그때가 되면 제일 먼저 찾아뵙겠습니다.

저의 영원한 사부이시며, 큰 형님되신

이초석 목사님께

피터 박(박 베드로) 올림

참된 깨달음

하나님의 영광을!

34년 만에 우리 교회로 돌아온 새 신자가 처음으로 부탁하는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삶을 들여다볼 때 무척이나 절박한 심정으로 이 땅의 것들을 먼저 구하고 싶었을 텐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니(마6:33) 참으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지으심에 합당한 간구임이 분명하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장 짧고 분명하게 요약해놓은 웨스트민스트 소요리 문답 제1문에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 삶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위해 그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기로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선포했음에도 예루살렘으로 향해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늘 아버지께 감사한 다니엘과 많은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왕의 영광을 위해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할 때,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으며 의연하게 풀무불 안에 들어갔던 그의 세 친구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 정신은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고전10:31)을 품고 살았음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결국 왕이 그들을 더욱 높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과연 왕이 높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낸 그들을 더욱 높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삶의 시작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아 ‘자녀로 아버지를 더욱 영화롭게’

(요17:1)하는 축복이 있길 기원합니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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