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체험을 사모하라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과 행위는 의로우시다. 하나님만이 뜻과 말씀과 행동에 모두 자유가 있다. 하나님만이 이 모든 권리를 완전하게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들은 그러한 권리와 자유가 없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찌니라’고 하시지만, 전쟁 때에는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그것도
‘남자, 여자, 늙은이, 어린이를 가릴 것 없이 심지어는 가축들까지도 사정 두지 말고 싹 죽이라’고 잔인하게 명령하신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 같고 어떤 모순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법을 스스로 어기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면 이것이 법이요, 저렇게 하라면 저것이 법이다.
하나님은 백세가 다된 아브라함의 가정에 찾아오셔서 자식을 얻을 것이라고 명하신다. 또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아 기르니까 이제는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신다. 그럼 이것은 하나님의 독선인가? 억지인가? 아니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인 것이다.
우리가 나무를 심으면 그 나무는 싹이 나고 자란다. 그 나무는 잎이 무성한 때가 있지만 잎이 목적이 아니다. 그 나무는 꽃이 많이 피지만 꽃이 목적은 아니다. 바로 그 열매가 목적이다. 그 목적을 위해 나무는 자라야 하고 다듬어져야 한다. 그 목적에 부합하여야 하는 것이 곧 법인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보면 구약시대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았고, 이제 신약시대 사람들은 은혜를 입지 않으면 저주를 당하게 된다.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은 때로 변덕스러운 것 같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일 뿐이다. 하나님의 독선과 고집이 아닌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법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요, 각 개인의 사정에 우선한다. 따라서 말씀이 가르치는 바와 자신이 행하는 바가 다를 경우에는 그것을 일치시켜야 하며 그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다. 즉 말씀의 내용을 자기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수준을 말씀의 내용대로 끌어올리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말씀에 관한한 순종만 있을 따름이지, 해석이라든가, 적용이라든가 하는 주관적인 생각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를 통해서건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면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억누르고라도 우선 말씀대로 순종할 뿐이다. 그것이 말씀에 우선하는 겸손이요, 그 겸손을 행한 자에게만 하나님은 비로소 생각과 마음과 감정이 변화되는 신령한 체험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것은, 그분이 나를 부리시는 주인이시요, 나는 그분을 종으로서 섬기겠다는 신앙고백인 것이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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