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조건이 있다 (마18:23~35)
하는 일이 잘 안 됩니까? 만사 꼬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안 옵니까? 늘 말씀드리지만 원인만 제거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무조건(無條件)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부입니다. 조건(條件)이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상태나 요소를 말합니다. 즉 조건이란 일을 진행함에 있어 상대에게 요구하고 제시하는 사항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심에 앞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라고 34년을 외쳤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 말에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제게 약속을 안 지키시나요?’ 라고 반박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은 당신이 아직 조건을 구비하지 못해서 하나님이 약속을 시행하지 못하고 계신 것일 뿐,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은행에서 대출해주지요? 그러나 아무나 해줍니까? 아닙니다. 대출조건을 구비할 때 해주는 것이지 그냥 아무나 해주지 않습니다. 동일합니다. 성경에는 ‘~하면’, 혹은
‘그리하면’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네가 조건을 먼저 수행하면’이라는 뜻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십일조를 드리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말3:10~11)는 말씀들이 그 예입니다.
‘나는 나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어요. 뭐가 잘 안 돼요’ 하는 분들이 꼭 알아야 할 전제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우고 있는 주기도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내게 잘못한 자를 용서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지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십자가의 사건은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를 뜻하는데,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과의 관계, 즉 수직적인 관계가 원활하면 사람과의 수평적인 관계는 자연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풀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인통(人通)해야 신통(神通)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기 싫어서, 우리에게 축복해주기 아까워서 이런 조건을 두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남의 죄를 용서해주는 사랑을 베풀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당하게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8장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어떤 임금이 종들과 회계할 때 일만 달란트, 실로 어마어마한 돈을 갚지 못한 종이 있음을 알고 그 종을 불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조금만 참아주소서. 빠른 시일 내에 다 갚겠습니다.”라고 하소연했습니다. 하도 애원을 하니 이를 불쌍히 여긴 임금이 그의 모든 빚을 탕감해 주고 그 종을 놓아 보냈습니다.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그 종은 신이 나서 길을 가다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몇 푼 안 되는 돈을 빚진 동료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그에게 빚을 독촉하며 당장 안 갚는다고 그를 고소하여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 만행을 지켜본 동료가 이 사실을 그대로 임금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대노하면서 그 종을 불러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데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며 즉시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할 만큼 큰 죄를 지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수 좀 한 내 가족을, 작은 잘못을 한 내 성도를, 내게 조금 손해를 입힌 내 친구와 내 이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우리의 죄를 탕감해주신 하나님이 분노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이웃이, 형제가, 가족이 죄를 지었기로서니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보다 크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얼마나 어디까지 용서할까요? 누가복음에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3~4) 하셨고, 마태복음에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마18:22)며, 하나님이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과 먼저 풀지 않으면 하나님은 예물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과 미움이 있거든, 용서하지 않은 것이 있거든 먼저 푸세요.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축복과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때, 혹은 시급을 다투는 문제가 있을 때면 금식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금식기도가 상달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사58:3)라는 탄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왜 응답이 없는가 하면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사58:4)는 말씀에 걸린 겁니다. 곧 금식도 다투지 말고 용서하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식하는데 남편이 친구를 데리고 와도 넓은 마음으로 음식도 차려주면서 잘 접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그럴 때 시부모님이 오시죠? 그럴 때도 ‘금식중인데 왜 오셔서 나를 괴롭게 하나?’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사58:5). 그런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92년 메인스타디움 집회를 앞두고 금식할 때였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시기를 “이웃과 화해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먼저 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관계가 소원(疏遠)했던 자들, 혹시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은 자들, 그동안 용서 못한 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화해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집회를 넘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금식하기 전에 용서할 자를 용서해주고, 화해할 자와 화해하세요.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8~9)는 말씀이 당신에게 임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용서와 사랑입니다. 용서와 사랑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또한 내 땅도 기름지게 합시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용서하지 못한 자를 용서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3). 할렐루야!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용서와 사랑이다
인통(人通)해야
신통(神通)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