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지 못하면 원망, 깨달으면 감사
모세를 따라 애굽 탈출에 성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찾아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벅찬 희망은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 앞에서 그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부서지고 말았다. 뒤에는 그들을 죽이려고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소리, 눈앞에는 건널 수 없는 바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는 모세를 향한 원망과 저주 섞인 불평이 앞섰다. 그렇게 시작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불만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계속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과 불평소리에 마치 민원 해결해주듯 번번이 해소해주셨다. 홍해를 갈라 애굽 군대의 추격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셨으며,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셨고, 반석을 터트려 생수를 공급해주셨다. 그런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가 없었다면 그들은 한순간에 멸절되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나 영원히 참으시는 분이 아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약속의 땅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족속에 대한 두려움 속에 또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었다. 그 수많은 이적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턱밑까지 인도하셨건만,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다. 결국 원망과 불평을 쏟아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사람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갔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한 여호수아와 갈렙, 광야에서 태어난 후손들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성경 출애굽기와 민수기까지 이어지는 하나님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이다. 사도 바울은 이 역사를 거론하며 고린도교인들에게 오늘의 거울로 삼아야함을 역설한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10:1~11).
눈이 가리고 귀가 막히면 그 어떤 진리의 말씀도 소용이 없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그래서 항상 눈앞의 문제에만 천착하기에 두려워하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문제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자, 그 영적 비밀을 깨달은 자는 늘 감사가 넘칠 수밖에 없다.
신앙생활이 늘 편안할 수는 없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닥친다. 어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을 수 있으랴? 수많은 인생의 암초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다윗이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찬송한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체험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시23).
2000년부터 목사님과 함께 했던 수많은 해외집회의 경험에 따르면, 호조건보다는 실상 악조건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는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은 늘 역사해주셨고, 고뇌와 번민의 시간 뒤에는 항상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망하지 말자. 불평하지 말자.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자.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5:16~18)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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