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의 은혜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늘에 계신 이는 살아계신 이요, 그가 하시는 모든 역사와 그가 말씀하신 모든 언약은 실상이다.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실존이 아닌 가상적 존재를 종교로 덧씌워 억지로 믿게 하는 허망한 교리처럼 여기려 하겠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만이 자기의 일을 하시는 엄위하신 이시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으로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게 하려 하심이요, 그 아들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칭하심은 얼마든지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고 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리라.
인간의 질병은 이 세상에서 우리 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질병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는 병을 고치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는 고통 속에서 단호히 나오라는 주님의 음성이기에 인간을 괴롭히는 악의 세력에 강력히 항거해야만 한다. 주께서 채찍에 맞으심은 나의 질병을 위함이니 복음이란 한마디로 주의 고난의 반대급부를 취하는 것이요, 담대히 시인하여 나의 사실이 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담대히 주장하며 감사와 찬양을 쉬지 않는다. 성령께서 치료하시는 자가 되어 “네 믿음대로 되라”(마9:29)고 크게 역사할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것이 죄가 되는 건 아니다. 단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그 순간에 이루어 놓으신 이 위대한 신유가 자기의 영혼 속에 이미 주어졌건만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병원이나 약에만 매달리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믿음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할 믿음을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이 큰 능력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게 보이는 것이다.
복음은 기쁜 새 소식이다. 전쟁에 나가서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신문기사는 그 부모에게 새 소식이다. 그 부모의 기쁨은 새 소식을 들은 기쁨이다. 어떤 엿장수가 복권을 한 장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도 팔자에 없는 것이라 체념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보고 당첨되었다고 말하니 “공연히 가슴 두근거리게 하지 마. 이 사람아, 복권을 맞을 정도의 운을 타고 났다면 엿장수 해 먹겠는가?” 하고 안 듣다가 정말 당첨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절하여 9시간 만에 깨어났다고 한다. 이 엿장수는 복권을 주머니 속에 며칠씩이나 넣고 다니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말이라고 시인하는 순간에 충격이 온 것이다. 믿음이란 인정하는 것이다. 충격이며 새 소식이다. “무식한 소리 하지 마. 신유? 귀신?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위 엿장수와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빛과 같으시고 열과 같으시고 바람과 같으신 이시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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