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주신 것은 복음을 전하란 것이다(마28:16~20)
기독교인이 1,2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픈 가슴만 부여잡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다시 한국교회가 일어나 빛을 발하고 전도의 봉홧불을 들어야 합니다. 이대로 촛대를 다른 나라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전도가 어렵지요? 문을 안 열어줍니까? 마음의 문도 안 열어줘서 힘듭니까? 그러나 그것이 전도 못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시절이나 전도는 어려웠습니다. 유독 지금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전보다 성령 충만을 잃었기 때문에 전도가 어려운 것입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마귀의 품에서 빼앗아 하나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힘든 것이지요. 다윗이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새끼를 물어 가면 그것을 빼앗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 않습니까? 그런 사투가 필요한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러니 전도는 우리의 지식이나 언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한다면 하나님이 박사들에게 시켰겠지요. 언변으로 한다면 달변가나 언변가에게 부탁하셨겠지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전도는 성령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그렇다면 왜 성령을 받아야 전도가 가능할까요? 성령을 받아야 권능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마가복음 1장에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1:3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신 예수님도 그냥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후에야 하셨습니다(막1:9~10).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한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그런 그도 어린 계집 아이 앞에서 스승을, 자기 입으로 고백한 대로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왜요? 성령을 못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 그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며 순교하기까지 복음전파에 매진했습니다. 빌립 집사가 복음을 전파한 것도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행8:5~6).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후 승천하시며 그를 따르던 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고 하신 것이고, 120문도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성령 받기를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은 오순절에 임하셨고(행2:1~4), 성령 받은 그들은 나가서 두루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받은 권세와 능력은 암행어사 마패 같은 것이요, 전쟁의 신무기와 같은 것입니다. 암행어사 마패 앞에 악정을 일삼던 관원들이 벌벌 떨지 않습니까? 북한이 세계를 향해 큰소리를 치는 이유가 강력한 핵을 가졌기 때문 아닙니까? 성령으로 받은 권세와 능력이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일으켜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자고로 사람들은 의심이 많아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요4:48). 그러나 귀신이 나가고 병든 자가 일어나는데 안 믿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제가 국내나 해외집회에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목도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 예수를 믿으라!”고 외치면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전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번 벨라루스 집회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많은 영혼을 구원할 것을 확신합니다. 베드로나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나가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하나님 말씀을 확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14:3). 사도행전은 바로 이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가 계속 써내려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성령의 능력, 곧 각양 은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8~11). 이 은사는 돈 버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영혼구원에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영적전쟁에 나가는 자에게 최고의 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사명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전도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무기 없이 나가서 싸우면 백전백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 알다시피 기도해야 합니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기도로 성령을 충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신 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 또 새벽 미명에도 기도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기도할 처소를 찾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제가 집회에 나가면 하루 7시간씩 기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천원과 만원의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 돈의 액수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가치를 가집니다. 1시간 기도와 2시간, 3시간 기도는 그 능력이 다릅니다. 하루 1시간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방어 정도는 할 겁니다. 그러나 하루 4 시간 기도하는 사람, 7시간 기도하는 사람,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는 등,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는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전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담대하게 나가서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성령이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니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나가십시오.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차선은 없다
최선을 다하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천국복음을 전파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