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되어 누리는 기쁨
할아버지 때부터 온 가족이 전심으로 예수를 믿었지만 고아원을 전전하고 그것도 모자라 목사인 아버지와 두 오빠를 연이어 총탄에 잃은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너무나 기가 막힌 나머지 그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하나님께 따져 물었고, 날마다 솟구쳐 오르는 분노 때문에 영혼과 육신이 파리해져갔다. 어느 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비로소 자기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또 눈으로 확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그 아이는 이제 자신의 아들 또한 목사로 하나님께 바치고 믿음의 길을 걷는 권사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과 두 오빠의 순교의 피를 밀알 삼으시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주고 있으니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이고 희생이며 사랑이다.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처럼, 당시에는 슬퍼 보이고 비참할지 모르나 후에는 빛나는 영광이며, 또한 무수히 남겨진 이 땅의 열매들은 그를 대변한다. 이는 해산을 앞둔 여인이 비록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 생명을 잉태하고 있기에 해산 후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진리를 알기에 언더우드 가문은 조선 땅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4대째 대대로 한국을 위해 헌신하기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이 진리를 알기 때문에 주기철 목사님의 아내인 오정모 사모님도 신사 참배 반대로 인해 옥에 갇힌 남편에게 “한국 교회를 위해 당신이 순교해야 한다.”고 힘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꿈을 가진 자가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위해 일생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고, 스승이 제자를 일깨우기 위해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이다. 내 가정의 복음화, 이 나라 이 민족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리라는 뜨거운 꿈을 가슴에 품고 ‘나를 쓰소서’라는 눈물의 씨앗을 뿌릴 때, 우리의 가정과 가문, 속한 모든 단체와 나라가 회복되고 굳건히 서는 기쁨을 속히, 그리고 반드시 누릴 것이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말에는 성취력이 있다
‘증삼살인(曾參殺人)’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증삼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언행이 신중한 효자였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베를 짜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증삼이가 살인을 했대요.” 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조금 후에 친척이 와서 똑같은 말을 했으나 증삼이가 그럴 리 없다고 믿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사람이 달려와 “당신 아들이 살인죄로 체포되었다.”고 했다. 세 번째 말을 듣고는 베틀에서 내려와 진위여부를 알아보려 나가려 하는데 증삼이가 돌아와서 말한다. “저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살인을 했는데 사람들은 제가 살인한 줄로 알고 있더군요.”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너를 믿었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내 마음도 흔들리더라.”고 했다.
말이란 이렇듯 무서운 파급력이 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혀의 권세에 있고, 혀의 열매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잠18:2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입술에서 거짓을 금하라” 고 강하게 말씀하신다(시34:12~13).
근래 유방암 말기로 고통 받는 성도를 심방했다. 투병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며 죽고 싶음을 말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인의 뒷말이었다. “그러나 이초석 목사님이 포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죽고 싶은 고통 중에도 목사님의 말씀 한마디가 산 소망을 갖게 했던 것이다. 누구의 말을 들으며, 무엇을 믿을 것인가? 우리는 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것이요, 그 들음이 믿음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롬10:17). 말에는 성취력이 있음을 잊지 말자.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어머니!
인생의 스승은 책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마음이 듭니다. 왜냐면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건 말없이 흐르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풀리지 않았던 관계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회복되었고, 풀리지 않는 일의 정답도 흐른 뒤의 시간 속에서 발견했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의 메시지도 거짓 없는 시간을 통해서 찾아냈습니다. 또한 언제부터인가 흐르는 시간을 통해 어린 시절 궁금했던 삶의 물음과 지혜의 답을 하나씩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습니다.
“왜 할머니는 밥을 흘리면서 식사를 하실까?”, “왜 아버지께서는 뜨거운 숭늉을 드시면서 시원하다고 하셨을까?”, “왜 부모님은 학교에 내야할 돈을 자꾸만 내일로 미루셨을까?”, “왜 어머니는 계단을 내려가실 때 뒷걸음으로 내려가셨을까?”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어느덧 부모님의 나이가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 서게 되니 비로소 조금씩 공감하게 됩니다.
사실 언니 오빠와 나를 차별하는 어머니께 서운해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울었던 적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 어머니가 안타까워 더 많이 울게 됩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는 태어남의 은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지금 여기 있음의 은혜를 덮을 수 있는 다른 은혜는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 있음으로’ 모든 가능성이 열리고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며 누군가에게 내 사랑과 기쁨을 전해주고 또 전해 받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살아서는 서푼이고 죽어서는 만 냥”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살아생전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을 철없는 자식들은 서푼으로 보다가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모습이 서푼이 아닌 만 냥이었음을, 아니 만 냥이 아니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때쯤 어머니는 이 땅을 떠나시고 그 은혜를 갚을 길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 은혜야말로 날마다 깊이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성공이나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의 5월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