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믿는 자의 특권이다
지식과 실천, 말과 행동, 이 두 가지를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가는 과정은 인격 성숙의 기본이요, 특히 지도자가 꼭 갖춰야할 덕목이며, 이것이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이다.
오늘날 지도급인사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잘 알다시피 국민의 기대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말과 행동, 곧 거짓과 불법, 탈법을 일삼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들이 과학자나 의사의 말을 듣는 이유는 그들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가? 목사가 증거하는 성경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며 보여주는 목회를 하셨다. 나 역시 이 말씀에 입각하여 세계 어디를 가나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해왔다. 나는 단에 설 때
‘오늘 내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가짜 목사요, 이 성경은 찢어버려야 한다.’고 담대히 외쳐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지 않으셨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내 믿음의 말에 그대로 역사해주셨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종이에 기록되어 있는 글이 아니요, 그 말씀이 살아 움직여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선언이다.
백번 양보해서 예수께서 단지 우리를 죽음 다음의 세계, 곧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일만 이루기 위해 죽으셨다 해도 우리는 그 구원의 역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지금 이 땅의 삶이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지경이라 해도 이생을 떠나는 날에는 현재의 고통에서 영원히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음 다음의 세상만 위함이 아니요, 오늘 지금 이 땅에 살며 우리 앞에 닥치는 모든 문제들로부터도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어놓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할 말을 잃는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곧 예수께서 가난하게 오신 것은 그를 믿는 자로 가난에서 해방되게 하려 하심이요, 그가 빌라도 법정에서 징계를 받은 것은 그를 믿는 자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함이며, 그가 채찍에 맞음은 그를 믿는 자로 병에서 놓임 받게 함이고, 그가 찔리고 상한 것은 그를 믿는 자로 죄악에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앞에 현존하는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을 받고 해결 받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을 믿고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연고로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다가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 봄에 농부가 씨를 뿌리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애쓰고 수고했다 하여도 가을의 결실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면 결코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목사님 말씀처럼, 우리가 이 땅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으면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믿음이다. 비가 멈추기를 기도했으면 비가 멈출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시작했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기다림은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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