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절대 2등이 없다(요일3:1~8)
전쟁에 2등은 없습니다. 오직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됩니다(벧후2:19). 그래서 전쟁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구약에는 실질적인 전쟁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잘 읽어보면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치욕적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하고 비극적이었는지를.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전쟁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악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인 귀신들이 우리의 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의 대적 마귀의 일을 진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요일3:8). 마귀의 일이 뭡니까? 우리를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서로 원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본질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망하게 하고, 서로 분열되게 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욥의 아내가 계속적인 재앙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한 것은 욥의 아내 뒤에 마귀가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그런 마귀와 그의 일꾼인 귀신들을 대적하고 내쫓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13:3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합니다. 되레 그것들과 타협을 합니다. 여러분, 북한의 김정은과 타협이 됩디까? 타협이란 일종의 약속인데 그들이 약속을 지킵디까? 어느 순간 되면 우리 뒤통수를 치지 않습디까? 하물며 마귀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다 뒤통수만 맞는 게 아니라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 타협했느냐 물으시겠지요? 혹시 이런 경우 없었습니까? “이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거야.” 라든지 “이 병은 하나님이 주신 거야, 깨달으라고.” 라든지 “가난하게 살게 하는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등등이요. 여러분, 이건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하지도 않고, 더욱이 우리를 병들게 하지도 않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이것은 제가 참 좋아하는 성경 말씀인데요, 세상의 악한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에서 부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그를 상하게 하셨고, 우리를 병에서 해방시키시려고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수없이 맞게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가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실까요? 병들고 저주 속에 갇혀 있는 것을 좋아하실까요? 그 소리를 들으면 누가 제일 좋아하는 줄 압니까? 마귀입니다. 얼씨구나 할 겁니다. “그래,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지지리 궁상떨며 살고, 죄악 속에 살고, 병들어서 사람 구실 못하고 살아라.” 할 겁니다.
여러분, 신앙에 타협이란 없습니다. 제사 지내지 않는 것만 타협하지 않는 신앙이 아니라 “감기까지 귀신이겠어?” 이런 것도 타협입니다. 당연히 감기도 귀신이지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이 가서 이건 “귀신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가 일어나 수종을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막1). 사업이 안 됩니까? “다들 불황이래.” 라고 말하지 마세요. 귀신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다에 나갔을 때 광풍이 일자 제자들이 잠이 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잠잠 하라, 고요하라.”고 하자 바람이 그치고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막4). 바람과 파도는 무인격체이지만, 그것을 조정하는 놈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 귀신인 거예요?” 라고 물으시면, 제 답은 “네, 그렇습니다.”입니다.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저주와 고통 속에 있게 하는 것은 다 귀신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그러니 무조건 그것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그것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대적하고 내쫓아야 합니다.
여러분,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이 켜지면 도둑들은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들을 내쫓으려면 영혼에 불이 켜지면 됩니다. 성령의 불이 타오르면 절대 마귀가 엄습하지 못합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시면 어두움의 주관자는 쫓겨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과 저주와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살전5:19).
에베소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엡6:13)고 쓰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입니다. 제가 이런 비유를 잘 들지요. 성령을 받은 자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총알이 들어있는 총을 가진 자와 총알이 없는 빈총을 가진 자와 같다고요. 똑같이 총을 들고 있으나 총알이 들어있는 총을 가진 자는 위험에 처하면 총을 쏠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빈총이라면 불안하겠죠. 결국 위협하는 것들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을 소유한 자는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과 귀신을 쫓아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총을 쏘면 총알이 나가 나를 해치려는 것들을 죽이듯,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면 그 예수 이름이 마귀와 귀신들을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습니까? 성령은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행2:38). 그런데 문제는 성령을 소멸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무시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휴대폰도 하루 종일 쓰면 배터리가 다 나가지요? 그래서 수시로 충전시킵니다. 기도로 충전해야 성령이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귀신을 쫓고 습관 따라 밤에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배터리가 나간 휴대폰이 쓰레기에 불과하듯, 성령이 소멸된 성도는 그냥 사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이건 귀신 아니야.” 이런 소리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 귀신의 밥이 되어 되는 꼴이 없고, 매일 그 밥에 그 반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하지만 전쟁에는 2등이란 없습니다.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악한 마귀에게 지지 않도록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고 내쫓으십시오. 그래서 금세와 내세에 평안과 축복된 삶을 누리십시오. 할렐루야!
전쟁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물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