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굼(Little girl, I say to you, Get up!)
우리 인생살이가 언제 절망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어두움이 깊을수록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또한 감사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성경 속 역경의 주인공인 야곱이나 고난의 대명사인 욥만큼은 아니지만, 인생살이 수십 년 돌아보면 야곱도, 욥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당뇨합병증으로 눈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이다. 두 번의 망막수술과 양 눈에 진행 중인 녹내장의 시야 확보율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급기야 두 번의 백내장 수술도 최근에 마쳤다. 이제는 더 이상 눈 때문에 힘들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망막 천공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실명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 하여 며칠을 우울과 한숨으로 지내는 중, 복음송의 가사가 귓가에서 맴맴 거린다. 인생의 어두운 절망 가운데 서성일 때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주셨던 주님의 손길을 기억한다. 벼랑 끝에서 ‘이제 떨어지면 끝이겠구나!’ 라고 단념하지만 어느 순간, 목사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품안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긍정의 마음과 주님의 무한한 사랑 덕분에 절망이라는 단어는 복음송 가사에나 나오는 단어이며, 나와는 전혀 무관한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맹인이 된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은 나를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기 바쁘다. 마인드 컨트롤도 소용없고,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다. 눈으로 인해 이십 수년 운영하던 사업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말할 나위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절망이라는 단어를 희망으로 바꾸고, ‘맹인이 된다면’이라는 생각 대신에 ‘비록 맹인이 된다고 할지라도’로 바꾸면 그 다음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소녀야,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 따라 죽음에서 깨어난 그 소녀처럼(막 5:41), 내 삶도 주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롭게 시작된 한해와 함께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으면 한다. 절망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붙들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싶다. 절대 그럴 리 없지만, 비록 나의 시력이 희미해진다 하여도 주님께서 내 인생의 빛이시니 내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믿음의 증인으로, 당당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다.
2017년 새해에는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처럼, 생사화복의 모든 것이 우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세상으로 항해하는 선장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빛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를 어둠은 결코 이길 수 없다. 어두운 절망의 커튼을 거둬내고 희망의 빛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2017년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오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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