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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화복(生死禍福), 내가 선택한다

868호 · 2016-10-15

부모는 내가 택할 수 없습니다. 시대도 내가 택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 누구의 자식으로, 이 시대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다.” 이는 우리가 생사화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고 죽는 것, 행복과 불행을 내 맘대로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누구나 죽음이 아니라 사는 것, 그것도 불행이 아닌 행복하게 사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生)과 복(福)은 무조건 택하고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30:16)는 말씀을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복된 삶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첫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첫 사람으로 아담을 만드셨으니까요. 그러나 그 후 아담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 먹느냐, 따 먹지 않느냐는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나님을 거역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인 하와의 꾀임에 빠진 아담은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역하고 죽음과 불행을.

성경은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시111:4),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년세는 짧아지느니라”(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잠19:23),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답을 보고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외침을 받고 고난을 받을 때는 그들의 국력이 약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4장에 죽음을 앞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발 하나님만을 진정으로 섬겨라, 그것이 너희가 사는 길’이라고 신신당부하는 고별사를 한 겁니다. 여호수아는 알았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수24:14). 그리고 그는 단호히 결단하기를 촉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오늘날 여러분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우상을 섬기고 살 것인가 말입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돌에 새긴 것에 절한다거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력을 우선적으로 삼고, 재물이나 명예, 심지어 자식을 우선적으로 삼는 것조차도 우상을 섬기는 것임을 알아야 확실한 판단이 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얹어놓고 삽니다. 회색분자들이지요. 그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꼭 그렇게 유별나게 믿어야 해? 적당히 세상과도 타협해야지.” 라고요. 그러나 단호히 말하지만 하나님은 회색분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가차 없이 그런 자들을 내치십니다.

원숭이가 어느 날 외출을 했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한 동네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외눈박이 원숭이들만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신기하듯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들의 놀이방식이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달리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이 원숭이는 슬슬 외눈박이 원숭이 곁으로 다가가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 눈을 가진 원숭이를 이상한 듯 쳐다보고 자기들끼리만 놀았습니다. 어떻게든 외눈박이 원숭이와 함께 하고픈 두눈박이 원숭이는 고민 고민하다 결단을 하게 됩니다. ‘나도 외눈박이가 되면 저들의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는 돌 하나를 들어 자신의 눈을 쳐 빼냈습니다. 그리고 외눈박이 원숭이에게 가서 “나도 너희들과 같이 이제 외눈박이야.” 하자 그들이 환대를 해주며 친구로 맞아주었습니다. 외눈박이가 된 원숭이는 행복했습니다. 자신이 병신이 된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외눈박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던 눈을 빼버리고 세상으로 향한 눈만 가지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자들만 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이것은 엘리야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지 확실하게 하라고 촉구하는 말입니다. 회색분자에게 하는 경고의 음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바알, 세상 쪽에 서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선택에 따른 결과 역시 여러분이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영광된 일이고 멋진 일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힘들고 위험하고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길을 ‘좁은 길, 협착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마7:13~14). 그러나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좁은 길이 평안한 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의 길로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서 떠나지 않더니 상상하지 못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 등 믿음의 선친들이 다 그랬습니다. 저 역시 ‘신앙에는 타협이 없다’고 주장하며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그 길은 눈 덮인 산야였고,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이었지만 이를 통과하고 나니 하나님이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해보지도 못한 축복을 저와 우리 교단에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눈박이가 본들 제대로 보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입니다. 하나님 눈에만 들면, 하나님의 관심만 받으면 만물은 여러분 앞에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쫓아다니지 마세요. 권력을 얻으려고 술수를 쓰지 마세요. 하나님을 좇으세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세요. 그러면 여러분 앞에서 사망과 불행은 사라지고, 생명과 행복을 쥐게 될 것입니다.

왕비를 비롯한 모든 자들이 부와 권력을 구했지만, 왕만 가지면 된다고 보자기를 편 후궁 같은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왕만 내 편이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니까요. 하나님과 함께 하면 생(生)과 복(福)은 내 것입니다. 할렐루야!

레일을 이탈한 기차는

전복될 수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만 따라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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