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삶
1979년 대학 캠퍼스에서 남편을 만났다. 연애시절,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 삼십여 만원이었을 때, 서울과 우리 집이 있는 부산을 왕복하느라 수 십 만원의 교통비를 지출하고 해외 근무를 나간 그분과의 통신비로 수 십 만원을 지출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유난스러웠다. 해외 출장 중에 귀국한 남편과 대학 재학 중에 만 19세의 나이로 혼인 신고를 했고, 1983년 초겨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우리의 행복은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아이가 생겼고, 최고의 대기업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은 남편은 최연소 과장 진급을 했다. 삼십대 초반에는 100평 이상의 저택을 소유하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시절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아주 특별한 사랑과 함께 우리 부부를 찾아오셨다. 그 특별한 사랑은 욥에게 찾아왔던 사탄의 시험처럼 아주 잔혹하였다. 그동안 쌓아왔던 우리의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후회 대신 오직 주님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믿음뿐이었다. 그 눈물과 고통으로 얼룩진 시련의 시간을 견디던 중에 우리 부부는 이혼을 했다. 악화된 건강과 신앙의 갈등이 이혼의 이유였지만, 마지막 남은 믿음과 사랑의 끈을 부여잡고 우리 부부는 10년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었다.
이혼 후 2~3년간은 타인처럼 지냈다. 하지만 헤어져 살아도 부부의 기본과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딸아이 앞에서 당당한 부모의 노릇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었다. 하여 우리는 친구처럼, 또 선후배처럼 지내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를 하면서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과 원칙을 고수하며 7년가량을 살아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얼마 전, 남편과 다시 혼인 신고를 했다. 그렇다고 당장 살림을 합치거나 한 식구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여태 그랬듯이 각자의 자리에서 부부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 방식대로 아름다운 가정을 유지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10년 전에 했던 약속, 10년 후에는 다시 한 가족으로 살아가자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래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가족 간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십년을 헤어져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근간으로 우리는 죽어서도 헤어질 수 없는 한 가족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왔다. 가족이라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했기에 십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천 가능한 지혜의 말씀으로 우리 삶을 승리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사랑과 지혜의 잠언으로 우리를 지켜주신 목사님께 전심을 다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오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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