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창세기 1장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라”고 쓰여 있다. 아무렇지 않게 읽던 이 구절이, 자세히 보면 이상한 느낌을 준다. 우리의 보통 상식으로는 아침이 되며 저녁이 되면 하루가 지난 것인데, 성경은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있다.
아침은 빛이요 시작이요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저녁은 어두움, 종말, 파괴, 절망을 의미한다. 성경의 하루는 해가 뜨는 6시를 제 0시로 잡는다. 따라서 제 6시 하면 지금의 낮 12시를 의미한다. 오늘이 지나면 캄캄한 죽음의 밤이 오는 게 아니라 바야흐로 해가 뜨는 내일이 눈앞에 환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성경은 내일을 보게 만든다. 아침 해뜨기 전에 나가보니 내일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고 일해야 할 땅이 환하게 보이니, 내일에 대한 계획을 쉽게 세울 수가 있다. 광야의 만나는 오늘의 양식이 아니라 내일의 양식이었다.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인생을 투자한 것도 영광스런 내일을 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헐라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하신 것도 부활의 내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육신이 죽어도 내일은 반드시 영생으로 부활한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일은 비가 올 것인가 안 올 것인가가 아니라, 바로 비가 오고 있는 내일, 구름 한 점 없는 내일을 보는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는 믿음이 있기에 3년 반이나 비가 오지 않아 구름 한 점 없는데도 “왕이여 빗소리가 들리니 내려가십시오.” 하고 자신 있게 말하였다. 그는 이미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는 내일을 본 것이다.
세상에서 지식인이라는 그들의 실상은 오히려 저마다의 지식에 단단히 결박당해 사고의 자유를 읽어버린 자들이다. 머리가 결박당하고 상상력이 묶여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밝은 내일을 볼 수 있는 믿음이다.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하나 믿음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믿음이 가져다주는 상상력의 역사는 참으로 대단하다.
왜 자살하는가? 밝고 희망에 찬 생명의 내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이 보이지 않아 캄캄한 절망뿐이기에 허무주의자, 염세주의자가 된다. 왜 억울해하는가? 신원(伸寃)의 내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며 저녁이 되는 하루를 사는 사람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하루를 사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 아니 천당과 지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신기류 목사
abba777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