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지난 21일 서울과 인천의 교육부 교역자, 교사 및 임원들을 향해 최고의 교관이자 교육국 담당 이초석 목사님은 이렇게 교육하셨다.
“밀림의 왕인 호랑이가 왜 자기 새끼들을 데리고 밀림을 누비고 다니는지 아니? 먹이를 위해서일까? No. 밀림의 세계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지형지물을 파악하게 하고, 지리적 환경을 익혀주기 위해 누비며 다니는 것이다. 그냥 왕이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왕도 가려운 곳은 내가 긁어야 시원한 법,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한 자가 어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호랑이도 새끼를 가르치거늘, 그러니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 아닐까. 지도자는 손발로 일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일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에 든 게 없다면 어찌 손발에게 지시를 할까. 맛없는 스프가 뜨겁기만 하듯, 머리에 든 것이 없으니 소리나 지르고, 무조건 복종만을 강요하지 않겠는가. 지휘관은 선견자요 선각자다. 먼저 보고, 먼저 깨달아야 함을 잊지 말라. 진정한 용기는 주도면밀함에서 나오고, 주도면밀함은 곧 머리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기억하라.
또한 장교와 사병의 차이는 의복부터 다르다. 옷이란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옷차림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또 의상에 따라 내 자세도 달라진다. 청바지 입었을 때와 정장차림일 때 너희의 행동이 어찌 달라지는지 유심히 관찰해보라. 아울러 지도자는 헤어스타일이나 표정관리, 언어관리도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전반적인 인성관리가 필수라는 거다. 너희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아래 사람들이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삶이 명품인생, 명작인생을 만들려면 체질개선, 정신개조가 필요하다.”
또한 24일, JC 아카데미에서 목사님은
‘만물을 상품으로 보는 안목을 갖자’라는 제목으로 강론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도와주랴(What can I do for you)?, 어떻게 도와주랴(How can I do for you)?, 늘 물으신다. 왜? 우리의 창조주요 아버지이시기에 우리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지혜 중 하나가 만물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살다온 삼촌이 다시 귀농하면서 하는 말, “아휴 서울은 물도 사먹어야 되는 삭막한 곳이야.”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조카는 “그래? 물도 상품이라면 뭔들 상품이 안 될까?”해서 성공한 경우가 있고, 런던의 한 유학생은 김밥을 햄버거처럼 포장해서 팔아 대박이 나고 프랜차이즈를 세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가 꽃을 어떻게 운송해서 세계에 파는지 다 생각해볼 문제다. 만물에 너의 아이디어를 불어넣으면 그것은 상품이 된다. 돈은 버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아이디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란다. 또한 지혜란 응용력이며, 정보입수와 그 활용인데, 그것은 간접자본을 말한다. 그래서 시류를 아는 자를 쓰라고 성경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어떤가? 그의 눈이 가려져 있고, 그의 귀가 막혀 있다. 그런 자에게는 영예가 합당치 아니하고(잠26:1), 미련한 자의 것은 취할 게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잠26:7). 그러므로 미련을 깨버리고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가 되라.”
이어 25일 중고등부 세미나에서 목사님은 ‘언어는 예술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다.
“고양이 두 마리가 쥐를 쫓는데 그만 쥐가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한 고양이는 ‘쥐구멍으로 들어갔으니 못 잡을 거야.’ 라고 했지만, 다른 고양이는 ‘짹짹’ 새소리를 내어 쥐를 꾀어내어 잡았다. 고양이도 2개 국어를 해야 사는데, 글로벌 시대를 사는 너희는 어찌 해야 할까 생각해보라.
또한 얼굴이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면, 언어는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다윗을 봐라. 그는 15년을 쫓겨 다니면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고 시로 썼고, 그 시가 씨가 되어 결국엔 왕이 된다.
마음과 입술을 지켜야 한다. 의식적으로 말을 잘 뿌려서 무의식중에서도 계속해서 좋은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내 인생이 천국이 되고 지옥이 되는 것, 다 혀에 달려 있다. 인생의 여백이 아직 많은 너희는 혀를 잘 사용하여 너희의 인생을 명품으로 만들라.”
누군가 목사님의 설교는 참 쉽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실천만 한다면 영·혼·육이 보장받는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닐까.
기자 신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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