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넜으니 뗏목을 과감히 버리겠습니다
나는 60평생 절만 섬기던 부모님과 3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책임감이 무거웠다. 어느 해 오빠는 결혼 3개월 만에 죽었고, 불의의 사고로 여동생까지 죽는 바람에 동생의 아이 셋을 데려와 키워야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 말씀으로 농사짓던 중 제일 잘 되었다던 그해에 농작물이 태풍에 다 쓰러졌고, 가축도 죽어 말 그대로 우리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 또한 결혼 10년 동안 나에게는 아이가 없어 그로인해 불면증과 심적 고통이 컸다.
결혼해서 남편직장을 따라 서울로 온 나는 아이가 없는 터라 보험회사에 입사해 설계사로 활동했는데, 가는 곳마다 고객이 나에게 예수를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량진 고객의 교회에 부흥회가 열린다며 한번만 가자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가 교회에 앉아 말씀을 듣는데, 마치 내 사정을 잘 알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하수구 뚫린 것처럼 답답했던 나의 마음이 뚫렸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예수를 영접한 그날 이후, 뭔지 모르는 기쁨과 힘이 생겼고, 남이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환해지며 불면증도 사라졌다. 집근처 가까운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내 생활은 즐거웠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싶어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던 나에게 어느 목사님이 쓴 ‘귀신 잡는 이초석’이라고 이단으로 분류된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귀신 잡는 해병대는 들어봤어도 어떤 사람이기에 귀신을 잡나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다 90년에 남편 직장을 따라 다시 광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광주에 도착하는 날, 운암동 로터리에 있는 ‘이초석 목사 춘계산상집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책에서 봤던 그 이름을 보게 되다니. 이삿짐을 풀고 물어서 장성기도원으로 갔다. 90년 그 날 밤, 기도원에서 생전보지 못했던 장면을 목격했다. 목사님이 귀신을 쫓는데 성경이 그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2천 년 전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다짐했다. 이초석 목사님 교회로 옮기겠다고.
그 후 광주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인도자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91년에는 예쁜 딸도 낳았다. 그러던 97년, 엄마가 위암에 걸려 전남대 병원에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위암 3기로 인파선 까지 번져 3~6개월 밖에 못산다고 했다. 문제는 병원수술예약은 12월 19일이고, 목사님 집회는 1월 19일이라는 것이다. 믿지 않던 모든 가족이 반대했지만, 나는 수술을 하지 않고 엄마와 집회에 참석하여 목사님을 통해 암을 고쳤고, 중풍으로 쓰러져 걷지 못했던 엄마는 광주집회를 통해 다시 걷게 되었으며, 지금은 혈관성치매지만 좋아져서 치매 같지 않으시다. 아버지는 중풍이었지만 중풍이 아닌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암과 중풍을 통해 부모님을 구원하신 것이다.
신앙생활을 잘했던 저에게 어떤 계기로 교단을 떠나 방황하던 때가 있었고, 그 때는 정말 힘들었다. 나는 부모님의 논을 담보로 대출받아 1,800평에 소나무와 백일홍을 심었다. 나무에 전문지식이 없던 제가 외삼촌 말만 듣고 시작한 일이다. 올 봄에 기도원에 드리려던 소나무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인천교회 건축 때 가족이름으로 소나무 20그루와 성부, 성자, 성령이란 나무와 함께 드리기로 했는데, 목사님께서 ‘네가 빚지고 고통당하고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 받으시겠냐’며 안 가져가셨다. 그래서 서울교회 지으면 드린다고 15년 동안 기다리면서 어느 정원에 있는 것보다 성전에 심겨지기를 기도했고 ‘헬기로라도 옮기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올해 3월, 목사님은 영혼을 살리는 대가로 이것을 지불하셨다. 목사님 뜻에 나는 전적으로 따랐다.
2005년, 물질을 다 잃고 죽고 싶을 때 두 손 들고 신학교에 갔다. 엄마는 80먹은 늙은 부모에게 어린것들을 두고 신학은 무슨 신학이냐며 반대가 심했다. 그때 나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다면 내가 알 수 있도록 예시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꿈에 그물질하는 꿈과 목사님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꿈, 또 빨간 양말을 주신 꿈을 주셔서 열정적으로 발로 뛰라는 뜻으로 받고 확신하여 신학교 4년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정읍사랑예수중심교회를 세웠다. 성전을 아름답게 꾸며서 입당예배까지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다.
목사님 말씀대로 과거는 부도난 수표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는 말씀처럼, 과거의 나는 잊고 이제부터 다시 달려가련다.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 교회 부흥으로 답하겠다 다짐한다.
정읍사랑예수중심교회 이은실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