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으신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아도 보 이 ᄂ다/ 유자(柚子) 안이라도 품엄 즉도 다마 ᄂ/ 품어 가 반기 리 엄슬 글노 설워 라’ - 박 인로
고등학생 문학책에 가끔 나오는 시조이다. 쟁반의 붉은 감이 먹기에 좋아 보이지만 그것을 가져가도 좋아할 부모님이 없어 그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이 지문에서 ‘조홍 감’과 부모님 이 무슨 상관인지를 가끔 물어본다. 어르신들이 붉은 홍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붉은감을 보고 부모님을 떠올린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그러고 보니 우리 할머니가 홍시를 좋아하시긴 해요.”라며 피식 웃는다. 그들은 아직 어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나이가 부모님의 나이가 되면 그때는 이시조를 이해할 것이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어린시절에 내가 바라보던 엄마와 지금 내앞에 있는 엄마는 같은 사람이지만,같은사람이 아니기도 하다. 날 향한 사랑과 응원은 변함없이 늘 굳건하지만, 엄마를 지탱하는 육체는 나날이 쇠해가고 있다. 따뜻하기만 했던 엄마의 가슴과 힘들 때 잡고 늘어지던 엄마의 팔은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야위고 가늘어져 가고 있었다. 바위처럼 크고 단단했던 아버지의 등도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내 울타리와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부모님이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내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그분들은 여전히 나의 울타리이자, 놀이터이다. 험난한 세상살이에 지 쳐 몸조차 가눌길이 없을 때, 부모님의 존재 그자체가 날 세우는 강력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매번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린시절 기억 속의 큰 아름드리나무였던 우리의 부모님들. 우리는 지난 세월 그 분들이 주시는 양분을 먹고 마시며 그시절 그 분들처럼 크고 울창한 나무로 자라게되었다. 하지만 더 넓게, 더 높게 뻗어나가기 위해 앞만 보고 살다보니 부모님의 존재는 쉬이 잊히고만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여전히 부모님들은 그 곳에 계시지만 마냥 우리를 기다려주지는 않으실 것만 같다. 그 옛날 어느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불현듯 붉은 감을 보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안타까워 할 시간이 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문득’ 부모님을 떠올리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오늘 만큼은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그리웠다고, 그리고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달라고 마음껏 표현해도 전혀 쑥스럽지않을 것 같다.늦기 전에 우리의 작은 마음을 있는 힘껏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전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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