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절대 보증서지 말라(잠22:26~27)
여보게!
내가 오늘 스승의 말을 버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말을 택한 것은 절실하게, 간절하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네. 자네는 절대, 절대 보증을 서지 말게. 보증은 절대 안 되네. 내가 누차 말을 했는데도 우리 성도들 중에 또 보증으로 인해 재산을 다 날리고, 패가망신을 당한 자가 있지 뭔가. 정말이지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보증이란 한문을 잘 보게나. 보증(保證)의 보(保)는 ‘사람 인(人)’ 변에 ‘어리석을 매(呆)’로 이루어져 있네. 매(呆) 자를 분석해보면 ‘입 구(口)’와 ‘나무 목(木)’으로 되어 있어 결국 사람의 입으로 어리석은 일을 한 자는 매를 맞는다는 뜻이지. 또 증(證)은 ‘말씀 언(言)’ 변에 ‘오를 등(登)’으로 그 말에 올라탔다는 뜻이니, 결국 보증이란 어리석은 일에 내가 올라탔으니 매를 맞는다는 뜻이 되네. 곧 내가 대신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라네.
나도 보증을 섰다가 엄청난 손해를 본 경험이 있지. 사업할 때는 ‘이사장님’, ‘회장님’ 하며 엉덩이를 툭툭 쳐주니까 우쭐해서 보증을 서준 적도 있고, 친구를 잃을까봐 보증 서준 적도 있고, 또 가족이 돈을 빌렸는데 채주가 와서 돈을 갚으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내가 ‘내가 해줄게’라고 순간 욱해서 말했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어서 갚으라고 하면서 내 말이 녹음된 소형녹음기를 트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가 떠맡은 일이 있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1~2)는 말씀이 딱 맞네. 내 입의 말로 내 스스로가 얽혔고, 내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힌 셈이니 스스로 자충수(自充手)를 둔 격이지.
여보게!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보증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고 했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성경의 말씀을 보면 그 답이 나와 있다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잠22:26~27),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찌니라”(잠27:13). 자기가 자는 침상까지 빼앗기니 뭔들 남아나겠는가. 그러니 가족은 어찌 될까? 또 보증을 선 자는 몸이 볼모로 잡힌다는 거야. 실제로 우리 성도들 중에 돈을 못 갚자 딸을 인신매매로 넘기겠다고 협박을 받은 자도 있다네. 열왕기하 4장에도 엘리사를 따르던 신학생이 빚을 남겨놓고 죽자 나중에 채주가 와서 빚 대신 아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협박한 사건이 있지 않은가.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22:7)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네.
그런데 말일세. 예전에는 인감도장을 찍어야 보증이 되었는데, 요즘은 전화로도 보증이 되더구먼. 우리 성도가 당한 일인데, 친구가 말하길 ‘전화가 오면 그냥 대답만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 ‘설마 무슨 일 있을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전화에 응했는데, 나중에 보니 자신도 모르게 보증인이 되어 있었다고 하더구먼. 내 말도 인감도장이 되는 거야. 그러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네.
혹시 이미 보증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나? 그 방법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네.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6:3~5). 그물에 갇힌 새는 절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네. 사냥꾼이 풀어줘야 나올 수 있지. 그러니 채주에게 찾아가서 진심으로 빌게. 한 번 찾아간다고 되겠나. 재판장을 찾아간 과부처럼 될 때까지 찾아가서 빌면 일이 해결될 수 있을 거네.
만일 보증을 서주고 싶으면 내 능력 안에서 서주게나.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으로 서주게. 누가복음 10장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오지.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난 자를 주막에 데려가서 살피고는 주막 주인에게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눅10:35)고 했지.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지. 또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하여 주인 빌레몬에게 담보의 말을 전하는 게 빌레몬서에 나온다네. 이렇듯 끝까지 자기가 책임을 다할 수 있을 때는 보증 서게나. 또 요새는 보증보험을 들어주는 방법도 있더군. 보증을 서달라고 친구가, 교인이, 가족이 말할 때 정말 다섯 번 생각할 것 열 번 생각하길 바라네.
여보게!
그러면 자네는 이런 질문을 내게 하겠지? 주님을 위해서 보증을 서는 건 괜찮은지 말일세. 그건 개인의 믿음의 문제라네. 믿음이 있으면 서는 거고, 아니다 싶으면 안 서는 게 옳다네. 괜히 목사의 강요나 주위의 권고로 보증을 서고 나서 후회하게 되면 교회마저 떠나게 되니까 하는 말이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업을 하던 사람 아닌가. 아직 목사가 되기 전인 집사시절에 내가 운영하던 인복유치원 옆에 교회가 성전건축을 했다네. 그 교회 목사님과는 여러 모양으로 가까운 사이였지. 그런데 그 교회가 공사 중 자금이 모자랐던 모양일세. 어느 날 그 교회 장로님 두 분이 나를 찾아왔지. 어음을 좀 끊어달라는 거야. 사실 좀 망설였다네. 그랬더니 장로님 중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 하나님 일에 보증서는 건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어음을 끊어줬다네. 그래서 교회가 완성되었지. 부도났냐고? 하나님이 돌아가셨나? 절대 부도 안 나지.
여보게!
이제는 스스로 보증이 된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네. 그 분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로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들을 보증하시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보증하셨다네. 스스로 우리를 책임지신 거지.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7:20~22).
그 분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뿐 아니라 병에 대해, 저주와 가난에 대해서도 보증이 되었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네. 그 분은 승천하시면서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지.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1~22). 무슨 말인지 알겠나? 우리를 보증하신 예수님이 가시면서 다시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성령시대야.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대해 다 책임을 져주신다는 거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 변화가 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붙잡게 되면 성령이 그에 따른 보증을 해주신다는 거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하는 거고,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되는 거라네.
여보게!
오늘 보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네. 세상 보증에 관해서는 정말 신중해야 하는 것 잊지 말게. 또한 죄인인 우리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게나.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잠17:18).
보증서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
당신의 말이
인감도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