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계란을 먹지 말고 내일의 암탉을 키워라
삼십년 이상 모녀지간을 넘어서 동지애로 똘똘 뭉쳐서 함께 살아왔던 딸아이가 어느 날 문득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 친구가 없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아요.”라며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래, 결혼도 아니고 교제하는 것인데….’라며 별 생각 없이 지냈는데, 딸아이와 그 녀석(?)이 결혼을 하겠단다. 정신이 번쩍 들며, 둘 다 박사수료생이라는 이유로 결혼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 녀석이 기독교인이 아닌 것이 결혼을 만류해야 할 가장 큰 이유였다.
반대의 이유를 묻는 딸에게 그 녀석이 못생겼다고 놀리며 한편으로는 아직 학생인 것이 싫다며 처음에는 좋게 타일렀다. 하지만 딸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딸아이가 얄미워서 짐을 싸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고, 세계대전에 버금갈 치열한 모녀 대전을 수십 차례 치르면서 반대에 또 반대를 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나의 반대에 비례하여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기만 했다. ‘그래, 기독교인이 아닌 것은 이해한다치자. 전도하면 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하면 그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마음을 굳게 다지고 딸아이와 그 녀석에게 교회 출석을 강권하였다.
그런데 웬 걸? 그 녀석의 집안은 골수 불교집안이고 할머니는 불교 종파를 창시한 분이어서 돌아가신 후에도 끊임없이 할머니의 설법을 기리면서 일 년에 수차례 불교 행사를 하는 집안이라는 것은 결혼 승낙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딸은 눈도 꿈적 안하며 그런 것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단다. 이방 나라에서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한 많은 성경 속의 인물들을 들먹이면서 성경속의 인물들처럼 두 사람의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굳은 믿음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 녀석’이 아닌 ‘예비사위’가 혼자 예수중심 청년부 수련회에 참가해 성령세례를 받고 교회 신문에 투고를 하며 날마다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심 ‘결혼하려고 쇼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진실한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보면서 ‘그래, 분명히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 하실 거야’라는 믿음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식 주례는 반드시 이초석 목사님을 모시고 하겠다는 ‘예비사위’의 뜻대로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드렸는데 사돈 집안에서 목사님 주례는 용납할 수 없으니 차라리 주례 없는 결혼을 하자고 통보해왔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서
‘아, 그래요?’라며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예비사위와 우리 가족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목사님께도 사정을 말씀 드렸고, 목사님은 흔쾌히 주례를 승낙하시며, 축복의 자리를 위해 지혜롭게 풀어나가자고 기도해주셨다.
결혼식 당일, 목사님의 주례사에는 신랑·신부가 염려한 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완고했던 사돈 내외를 비롯한 사돈댁의 ‘○○보살’ 손님들은 목사님이 남기신 화평한 가정과 온유한 아내가 되라는 주례사가 좋았다며 주례 선생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살라는 덕담을 남기셨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여행 후 딸아이가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간 날, 사돈어른이 신당으로 딸아이 내외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 말, “너는 기독교인이니까, 절은 하지 않아도 된다. 네 방식대로 기도해라. 그리고 집안에 일체의 제사나 행사에는 참석지 않아도 되니까, 둘이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셨단다. 딸아이가 첫 명절을 시댁에서 보낸 후 앞으로 명절에는 차례를 지내는 대신 해외여행을 다녀오라고 허락하시고, 딸아이 내외가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내색하지 않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들이 그렇게 완고하게 나오다가 뜻을 꺾은 것은 다름 아닌 딸아이의 선한 행동 덕분이라고 믿는다. 항상 생글거리면서 웃고 시어른 대하기를 마치 자기 부모님 대하듯이 살갑게 대하며 예의 바르게 가족들을 섬기는 자세가 시댁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닐까? 상냥함과 친절함, 진심과 전심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고 가족과 친지들을 대하는 태도에 감동을 받으신 그분들에게 딸의 종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분들도 딸 내외와 함께 주님께 나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 녀석’에게 공부하는 학생이라 경제력이 없다고 투정 부렸고, 나의 절친인 ‘설경구’보다 못생겼다는 등 이래저래 놀렸었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사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암탉을 키우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호의와 사랑을 베풀며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경제력이 없다고 놀렸던 사위에게는 세계 제일의 기업에서 러브 콜이 날아오고 있고, 딸아이도 연애시절보다 더 열심히 미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못생겼던 ‘그 녀석’의 얼굴은 로버트 레드포드보다 멋진 사람으로 변했고, 소중한 두 아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날마다 주님의 인도함 가운데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지금은 아직 어려서 알을 낳지 못하는 암탉이지만, 조만간 나의 자녀들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할지 기대해본다. 욥기서 8장 7절의 말씀과 함께 올해 달력에 적혀있는 “오늘의 계란보다 내일의 암탉을 키우라”는 목사님의 잠언은 오늘도 두 손 모으며 기도하는 나에게 다가와서 ‘오자유 힘내라!’며 툭! 하고 나를 깨우고 가신다.
오자유
lovelyacto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