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감정, 나의 감정
우리나라에서는 감정을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감정이 들어도 쉽게 표현하지 않으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감정을 표현하면 그건 그냥 기분일 뿐이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나 감정을 억누르고 살면 우리나라에 ‘한(恨)’이라는 단어가 있겠는가.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을 너무나 참고 살아서 병이 생기고 그 병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화병(울화병)이라는 단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화병의 영어표현도 그냥 화병(hwa-byung)이다.
감정적인 이유를 잘 해결하기 위한 심리 상담 같은 치료 방법들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며 감정을 억제하는 사회 분위기에 누구나 심리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 상담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이러한 상태이다 보니 최근에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분노형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지 않으니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유연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에 잘 귀 기울이고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감정적인 타인을 타산지석삼아 자신의 감정도 어느 정도 절제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감정은 개개인에게 아주 중요하긴 하지만 감정이 우리를 올바른 곳으로 데려다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좋지 않은 감정이 들면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고 지금의 감정을 치유하고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야생마처럼 날뛰는 감정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김성일
cre8tor@naver.com
‘새로고침’(Refresh)하세요!
예전에 유행했고 또 제가 좋아하던 세상 가요 중에 ‘꿍따리 샤바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리 한 번 질러봐…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불현듯 이 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는 그런 걱정과 고민, 염려들을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어떻게든 속에서 털어버리라는 조언이지요. 한 마디로 리프레쉬(Refresh), 즉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고치고 원기를 회복하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바삐 돌아가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이런 ‘새로고침’의 필요성을 많이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한 나머지 건강을 해친다거나, 사소한 일에 마음과 생각을 뺏겨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다윗이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는 블레셋의 장관 골리앗을 물매로 때려잡고 승리를 거두었을 때, 사울 왕은 다윗의 용맹과 지혜를 높이 사서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를 환영하는 여인들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는 노랫말을 듣고는 불쾌함을 느끼고 그 때부터 다윗을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점 다윗을 두려워하더니 평생에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죽이는 대적이 되었다고 사무엘상 18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울이 폐하여지고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만약 사울 왕이 자기 자신 안에 있던 왕으로서의 부담과 전쟁에 대한 스트레스, 다윗에 대한 시기심 등을 여유를 가지고 잘 다스려 털어낼 수만 있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고 충성된 신하요 아들의 절친이자 자기 사위였던 다윗에게 창끝을 겨누고 말았습니다.
리프레쉬(Refresh)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도 이번 설 연휴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칩거(蟄居)하는 가운데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몸도 마음도 신앙도 ‘새로고침’하세요!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생명의 문이 되는 “입”
사람의 입은 몸을 지탱하게 하는 영양의 보급로이면서 호흡기능을 겸하는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부위로서 소화기간의 첫 관문이기도 합니다. 입으로는 내 몸에 유익한 음식과 보약도 들어가지만 내 몸을 해치는 음식이나 독약도 들어갈 수 있어 입은 생명의 문인 동시에 지옥의 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입은 책임의 문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인데, 그래서 생겨난 말이 “심사일언(深思一言)”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이지요.
“말이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자와, 말에 담기는 내용, 그리고 말이 향하는 대상이다. 말의 목적은 마지막 것과 관련되어 있다. 즉 말이 향하는 대상, 곧 듣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고통스러운 말은 듣는 사람을 상처 입히고, 상스러운 말은 듣는 사람을 상대로 모욕하는 것이며, 거짓된 말은 듣는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되고, 헛된 말은 듣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그의 친구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 이야기가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까?” 그리고 “듣는 나에게 유익한 얘기입니까?” 라며 두 가지를 묻더니 “그렇다면 말해보시오.” 하자 그 사람은 “두 가지 다 아닙니다.” 라며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우리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부정적인 말을 전해들은 후엔 꼭 “나 귀먹었다.” 하시며 부정의 말을 씻어 내버린다고 합니다.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 아닐까요?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15:4).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