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는 도움을 요청한다 (잠13:13~22)
“What can I do for you?(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해외에 나가면 제가 제일 먼저 받는 인사입니다. 그 쪽 대사관이나 영사관 에서 비상시에 연락하라고 문자가 옵니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면 프론트 데스크에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말하면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도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네가 필요한 것을 말해라, 요청해라. 내가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하나님, 저것이 필요해요.”라고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7) 하신 것은 언제든 요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힘이나 내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
(눅18:27)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물과 만인을 들어서, 또 천군과 천사를 파송해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왜 요청하기를 주저합니까? 하나님 입장 봐주는 겁니까? 아니면 체면 때문입니까? 아니면 거절당할 것 같아서 아예 청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봐드릴 필요 없습니다. 어린 자식이 부모 입장이나 형편을 봐주며 떼씁디까? 부모야 어떠하든 막무가내로 조르지 않습니까? 우리 장로들에게 물어보니 손주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집에 있다가 엄마 보고 싶으면 새벽이든 말든 가겠다고 울어댄답니다. 그러면 그 새벽에 데려다 준다고 합니다.
주일마다 저의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권사가 얼굴에 피부병이 돋아서 팅팅 부어올랐나 봅니다. 그러면 저에게 전화를 해서 기도를 받거나 찾아와 안수를 받았어야 하는데, 제 깐에는 ‘이런 일로 바쁘신 목사님을 번거롭게 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병원에 다녔는데, 되레 부작용이 난 겁니다. 우연히 그 교구 전도사가 제게 상담을 왔다가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그 권사에게 전화를 해서 마구 야단을 쳤습니다. “아니, 권사님이 왜 내 형편을 봐줍니까? 아프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지, 안 아프고 봐야 할 것 아닙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럼요, 제 형편도 봐줄 게 없는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입장을 피조물이 봐드린다고 한다면 어불성설 아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 앞에 체면을 차린다면 우습지요. 누가복음 11장에 늦은 밤 친구에게 보리떡을 구하러 간 자가 체면을 생각지 않고 강력히 요청했기에 하나님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들 것을 메고 갈 것을 친구에게 요청했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지붕을 뚫어 예수님 앞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체면을 차렸다면 평생 반신불수로 살았어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할 때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누구입니까? 느헤미야가 포로로 끌려온 나라의 왕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를 택해 관직은 주었다지만 그래도 느헤미야에게 있어 아닥사스다 왕은 그리 달가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금식기도를 마친 후 과감히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청해 예루살렘 성을 재건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체면을 차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체면치레 하는 것 봤습니까?
그리고 상대가 도와줄 것 같지 않아서 아예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하나님도 무시하는 교만한 재판관이 과부의 청을 들어줄 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도전했고, 수차례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결국 재판관의 도움을 받아냈습니다. 과부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속 그를 찾아갔더니 하나님이 그의 생각을 바꿔서 그를 도와줬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론 ‘이건 하나님이 해주시고, 이건 안 되고…’ 라며 스스로 판정을 내립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격입니다. 그래서 아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고통당하며, 문제를 평생 껴안고 살아야지요. 요한계시록 5장 11절에 천사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고 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일하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부리는 영’입니다(히1:14). 부린다는 것은 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함구하고 있으니 천사가 일을 안 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로 가난한 나라에 선교를 나가기 때문에 다각적인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날씨를 축복해주시고, 그곳에 지력이나 재력 있는 자, 권력자를 보내사 저를 돕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가면, 하나님이 100% 도와주십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주지사, 시장 등 권력 있는 자들을 보내 경비와 경호는 물론 모든 일이 수월하게 해주십니다.
30년을 다시 시작하면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하나님, 이대로는 못 이끌어갑니다. 제게 30대 기력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30년 갈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주일 오전예배는 물론 오후 3시 은사예배를 3시간씩이나 인도해도 거뜬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눈으로도, 귀로도,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예비해놓으셨다가 도움을 청할 때 천사를 통해, 사람을 통해 주십니다(고전2:9).
오래 전, 파주의 최 장로님이 장사를 하는데 너무 잘 되니까 주인이 나가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하려고요. 저에게 상담을 왔기로 작정기도를 하라고 했지요. 그런데 40일 작정기도 마지막 날, 최 장로님 입에서 ‘가봐라, 가봐라’는 방언 통변이 나왔답니다. 그래서 새벽에 자기가 사 둔 땅에 나가보니 어느 사람이 서 있었고, 그 사람이 “이곳에 건물 집시다.”라고 대뜸 말하더라는 겁니다. 돈이 없다고 하니까 “내가 설계사인데 임대되면 그 때 돈 받겠다.”고 했고, 그의 귀띔으로 알게 된 파주의 수전노로 소문난 노인을 찾아가 그 분에게서 돈을 끌어다 건물을 지었습니다. 수전노가 이자도 안 받고 돈을 빌려줬다는 거 아닙니까? 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왜요? 도움을 요청하니까요.
6·25때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기에 지금 이 나라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치고 경제가 도탄에 빠졌을 때 IMF에 도움을 청했고, 경제개발도상국이던 시절, 다른 나라에 차관을 요청해서 오늘날의 경제가 이룩된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 때문에 5자 회담이니 6자 회담이니 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집안에 돈 벌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까? 동사무소를 방문하면 도와줄 겁니다. 농사를 짓습니까?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까?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기술과 지원금을 얻게 됩니다. 학비가 모자랍니까?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세요. 국가 제반시설이나 공공기관은 국민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청할 때 언제든 달려와 도와줄 것입니다. 급할 때 119에 전화하고, 112에 전화하면 소방관이, 경찰이 달려와 도와줍니다. 경찰서 앞에 가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또한 아들딸에게도 도움을 청하세요. 나이 들어 자식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한 겁니다.
예수님도 복음전파를 위해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왜 당신은 혼자 하려고 합니까? 지혜로운 자는 도움을 요청하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 협력해야 산다
부모자식 간에
무슨 체면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