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바꿔 먹지 맙시다!
어릴 적,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에 엿만큼이나 훌륭한 간식거리는 없었다. 가락엿, 땅콩엿, 울릉도 호박엿, 몸대추엿 등, 엿 장수 아저씨의 좌판에는 온갖 진귀한 엿들이 한 가득이었다. 찰칵거리는 가위 소리와 함께 엿장수 아저씨의 구성진 창가 소리가 들릴라 치면 동네 꼬마들은 순식간에 구루마(손수레)를 에워쌌다. 행여 엿 한 조각 얻어먹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하지만 마냥 하루 종일 따라다녀 봐야 얄짤없었다. 한 입 맛이라도 보려면 하다못해 철사나 전선 쪼가리, 찌그러진 냄비 뚜껑이라도 가져가야 했다.
어느 봄날이었다. 겨우내 보이지 않던 엿장수 아저씨가 오랜만에 동네 어귀에 찾아왔다. 친구들은 언제 모아두었는지 이것저것 쇳조각들을 가져다가 엿을 바꿔 먹었다.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니 자꾸 군침만 돌았다. 하지만 마땅히 가져갈 게 없었다. 그 때였다. 곤로(석유풍로) 위에 있던 법랑냄비가 눈에 들어온 것은. ‘저것도…, 바꿔주실까?’ 기우였다. 아저씨는 껄껄껄 웃으시더니 엿을 한 보따리나 싸주셨다. 정말 엿장수 맘 대로였다.
“고놈, 참 똘똘하게 생겼네. 이건 네가 마음에 들어서 더 주는 거야. 앞으로 이런 거 있으면 더 가지고 오렴.”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눈길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정말 겁나게 맞았다. 법랑냄비, 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다. 어머님께서 ‘그릇 계’를 들어 몇 달 만에 장만하신 귀하디귀한 꽃무늬 냄비였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 때 그 시절 법랑냄비가 그렇게 귀한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것도 모르고 엿가락 몇 조각에 낼름 바꿔먹고 말았으니…. 다 가치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요즘도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람들을 종종 대한다. 은혜의 가치를 모르고, 직분의 가치를 모르고, 천국의 가치를 몰라서 세상 것, 자기 편한 대로 엿 바꿔 먹는 사람들 말이다. 호세아 선지자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고 왜 그렇게 강조했던 걸까? 알아야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엿 바꿔 먹지 말라! 당신이 받은 그 구원의 은혜를 위해 예수께선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 남김없이 흘려주셨다. 충성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시고 거룩한 일에 동참케 하셨다. 새해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소망하기에 앞서, 먼저 말씀으로 우리 믿음의 현 주소를 점검해 보는 게 어떨까?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