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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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그저 예수님이 좋아서 뛰었습니다

831호 · 2016-01-29

1985년 5월 26일, 17대 종갓집에서 우상만 섬기던 노귀자(본명)가 철산예루살렘교회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인해 달동네 골방으로 이사 가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3년을 누워있으면서 몸무게는 38kg까지 내려가고, 늘 죽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의 전도로 철산예루살렘교회를 가게 되었지만 시장 통같이 정신없는 모습에 이단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 안수를 받는 순간 죽고 싶은 생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고, 산천초목이 춤을 추고, 꽃도 방실방실 웃고, 나무도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마른 나무에 불이 붙듯이 예수에 미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미치도록 좋아서 목숨 걸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영혼 구원에 불이 타 잠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심지어 꿈에서까지 매일 전도만 하였습니다. 온 동네 사방팔방 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고 다니니까 ‘할렐루야’, ‘미친년’, ‘돌아이’ 등등의 별명이 생겼습니다. ‘저년을 쫓아 내야한다’, ‘우리 집 앞에서 전도만 하고 있으니 집이 안 팔린다’, ‘전세도 안 나간다’, 욕도 많이 먹고 전도한 분의 남편들이 찾아와 우리 아내를 미치게 했으니 우리 가정 책임지라고 삿대질을 하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또 동네 교회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기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빠져 나가니까 이단이라고 자기네 교회에서 새벽기도, 저녁기도도 못하게 했습니다. 다른 대형교회 조장, 구역장들이 관광버스 한대가 꽉 차게 우리 교회 철야에 참석하다보니 그 교회에서 사람이 찾아와서 못 가게 차 앞에서 지키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전도에 미쳐있다 보니 아이들 밥도 안 해주고 다녀서 아이가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남편도 이제는 더 이상 못살겠다며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마침 기도원 집회가 있어서 남편에게 이혼하더라도 한번만 기도원에 같이 가보고 이혼하자고 설득해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3년간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들어주시어 남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 성령의 불을 받아 같이 예수에 미쳐서 암환자, 중풍환자들을 업고 교회에 모시고 다니고, 기도원 식당봉사를 하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항상 기쁨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전도만 할 수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노방전도를 다니고, 집집마다 전도할 사람의 아이들도 봐주고, 이삿짐도 같이 나르고, 반찬도 해가며 우리 교회에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교회만 온다면 자존심 버리고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었습니다. 지옥 가는 영혼들이 너무 불쌍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전도하고 잠을 자려고 누워서 눈을 감으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다시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눈을 뜨지 못하고 죽는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좋았고 사람이 좋아서 손발이 닳도록 뛰었습니다. 예수에 미친 한 여자로 인하여 제가 있던 동작구는 부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전도한 분 중에 주의 종 12명이 나왔고, 불임이던 사람 7명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조장 구역장들도 수없이 나왔습니다. 예수중심 1호 기도처가 동작구에 생겼고, 300명의 성도가 모일 정도로 부흥되었습니다. 이후 흑석기도처, 대방기도처, 동작2기도처까지 생기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2005년 3월, 꿈속에서 총회장 목사님이 88체육관 단상에서 저에게 상을 주시면서 세상 끝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하시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일날 새 신자를 모시고 안수를 받는데 이시대 목사님께서 전도사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를 시키실 거면 서울에서 제일 어려운 교구로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양재교구로 보내주셨습니다.

막상 와보니 전설의 고향 같은 곳이었습니다. 장판은 찢어져있고 커튼은 원래 무슨 색인지 모를 정도로 찌들어 있었고, 문은 다른 성전에서 수리하고 버린 합판을 주워 와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빚도 500만원이 있었고 성전의 차는 폐차 직전이었습니다. 성도는 10명 정도 계시는데 치매와 중풍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소리 지르며 싸우기 바빴습니다. 성전 주위 사람들은 우리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얼마나 괴롭히는지 맞기도 하고 머리채도 잡혀서 머리가 한 움큼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 정신질환자들이 모여 항상 싸움이 나고, 경찰이 매일 출동하고, 서울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몇 개월을 하다 보니 도저히 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하며 더 이상 못하겠으니 그만하겠다고 하였더니 성령께서 ‘네가 못하겠다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주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1년 동안 집에도 안가고 기도처에서 먹고 자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밤낮으로 뛰었습니다. 가락시장에서 우거지를 주어다가 날마다 모시고 식사대접 해드리고 섬기고 사랑해드렸더니 귀신도 떠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만물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약중독자가 치료되어 봉고차 운전봉사를 하고, 알콜중독자가 술도 끊고 직장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을 가보니 의사가 하는 말이 혈소판이 거의 없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다고 하였습니다. 쉬면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 더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이러다 죽으면 천국가고 순교하는 것인데 이런 영광이 어디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영혼을 살리는 일이 내 영혼도 살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만 가지 병을 고쳐 주셨고 만 가지 축복도 주셨습니다. 최고 일꾼 권사님, 조장님들이 오셨고, 성전도 수리하고, 차도 사고, 빚도 갚고,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 이루었습니다.

아무데도 쓸 데 없는 마른 막대기 같은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게 되어 30년을 같이 왔다는 것이 영광중에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님과 함께한 목회길, 넘치는 은혜 잊지 않고 왔기에 지금까지 따라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목사님 30년 가시는 길에 작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하여 맡은 자리에서 충성하며 30년을 따르려 합니다. 목사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서울교회 양재교구 주향기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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