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내 것이 되었다는 뜻이다
지난 금요저녁예배에 우리는 김상욱 목사의 기도원 설교를 함께 보았다.
“저는 어제도, 오늘도 목사였습니다. 17년 동안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최근에 들어서 ‘야, 너 이제 목사처럼 보인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17년 동안 목사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는 제 입장에서 본 것이던 것이죠. 그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였습니다. 내가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종은 ‘하나님 편의주의’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참 종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들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하는 것입니다.”
듣고 배운 것이 내 속에 들어와 내 삶을 변화시키고 행동으로 촉발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해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깨달음의 정의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깨달음이란 내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이나 행동 역시 사람은 가식적으로 꾸밀 수 있기 때문에 진정 깨달았다면 그 배움 자체가 완전히 나에게 체화되고 습관화되고 조직화되어 분명한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만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새로 단장된 1성전 입성을 앞두고, 또한 새로운 30년을 시작함에 있어 지금의 정신 상태와 각오로는 안 된다는 진단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제자들을 향하여, 직원들을 향하여 “깨달았냐?”고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바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깨달음을 향한 채찍질이다.
“여러분,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 해도 내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그날 그 시에 여러분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공평한 시간을 주셨지만, 그날에는 반드시 공정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네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예전에 제자들을 때리면서 가르쳤습니다. ‘지금 나한테 맞고 정신 차릴래, 나중에 예수께 맞을래?’ 나중에 예수께 맞는다면 어둠 속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합니다. 목사였다고, 장로였다고 보상하시는 게 아닙니다. ‘네가 내 명령을 지켜 행했느냐?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었느냐? 네 영혼의 자녀가 몇이냐? 네 열매를 내어놓아라!’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겁니까? 진실로 깨달아야 합니다.”
목사님은 1성전 입성을 앞두고 예배의 개혁을 선포하셨다.“4부 예배 시간을 오후 3시로 바꿉니다. 4부 예배는 전혀 기도하며 찬송하며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시간제한도 두지 않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진행할 것입니다. 오전 예배가 끝나면 3시 예배에 오기 원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세요. 2부에 잠깐 얼굴 내밀고 가고, 오전에 왔다 가는 교역자나 제직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전 예배를 마친 성도들을 모셔다 드리고 다시 전도한 영혼들을 모시고 오후 예배에 와야 합니다. 주의 날입니다. 하루 종일 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짓지도 꾸미지도 않은 새 성전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이 땅뿐이라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반드시 그날에 우리가 행한 대로 보상하시어 썩지 않는 면류관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해봅시다!”
우리는 오랜 시간, 핍박을 견디며 예배 처소를 옮겨 다녔고,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자리를 감수하며 30년 목사님의 뒤를 따라왔다. 그런 우리를 미쁘게 여기사 이제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으로 인도해주셨다. 이는 우리에게 주신 기회다.
이제 진짜 깨달아 내 것이 되었다면, 내 마음이 지시하고 목표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목사님의 가르침과 독려에 적극 부응하여 새 성전, 새로운 30년에 다시 한 번 부흥의 새 역사를 이루어보자.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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