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리 vs 잔소리
신학교 설교학 시간. 강의는 신학생들의 설교 실습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두 명씩 순서를 이뤄 발표하면 이시대 교수님의 평가와 재교육이 뒤따랐다. 발표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필자의 순서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 공교롭게도 먼저 발표한 신학생과 주제와 내용이 너무나도 겹치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엉겁결에 내용을 조금 수정하고 단상에 올랐다. 설교 이후, 각자에 대한 총평이 이어졌다. 앞 선 신학생에 대한 평가는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은 평가는….
“내용은 없는데 목소리만 높이는 이러한 설교, 솔직히 역겹기까지 합니다!”
순간 얼굴이 ‘훅’하고 달아올랐다. 고개가 절로 떨어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강의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어떻게 그 시간을, 그 날을, 그 주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모두 내가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안이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단에 서 봤다는 경험이 안일함을 초래했다. 그 대가가 비평을 넘어 질책으로 이어졌기에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참담하기만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금요철야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교육전도사가. 그 자리가 어떤 자리던가!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입은 바짝바짝 말라갔다. 얼마나 흥분했던지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아예 홍시가 되어버렸다. 설교를 마치고 행정사무실에 들렀다. 마침 그곳에 이시대 목사님이 계셨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그토록 흥분된 마음을 급속도로 식혀버렸다. “신전도사, 자네 설교는 내용이 없어, 내용이.... 쯧쯧쯧.”
전에도 들었던 바로 그 지적이었다. 뼈아프게 반성하여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그런데 또 이런 평가라니….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이러한 냉정한 평가야 말로 내게 더 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 그날의 일기엔 ‘더 이상 이런 평가를 받지 않게 더욱 정진하리라’ 다짐하는 눈물로 얼룩졌다. 그리고 그 쓴 소리가, 그러한 다짐이 신학교 강단에 서게 했고 오늘의 메모광이 되게 했다.
“괜찮아, 잘했어, 수고했어.” 하는 말들이 듣는 순간에는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껏 나를 성장케 했던 것은 ‘쓴 소리’였다. 때론 좌절감에 몸부림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무안하여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 숨고 싶은 것처럼, 폐부를 찌르고 멘탈을 뒤흔드는 ‘쓴 소리’가 필자의 마음을, 삶을 담금질하게 만들었다.
‘쓴 소리’는 관심이다. 사랑이다. 누군가 내게 건네는 ‘쓴 소리’를 단지 짜증나게 만드는 ‘잔소리’로 취급할지, 아니면 나를 바꾸고 성장케 할 기회로 삼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듯이 우리 삶은 항상 우리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된다. ‘쓴 소리’와 ‘잔소리’, 당신의 선택은?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