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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 따로 있나
808호 · 2015-08-21
기도원에 사는 박 장로는 산에서 어린 나무를 가져다 직접 분재를 키워 수십 점의 분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박 장로 화단에 있는 많은 분재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장로님, 나는 40년 전에 분재를 했었습니다. 장로님의 분재는 상품가치가 없어 보입니다. 분재란 자고로 분재분이 좋아야 하고, 곡(曲)이 많아야 고급스러운 겁니다. 또한 분재만 덜렁 놓는 것보다는 산수경석(山水景石)을 배열하여 산의 축소판를 만들면 더욱 운치가 있고 고급스럽습니다. 예술 중의 예술은 석부작(石附作)입니다. 돌은 예술성이 뛰어나다한들 죽은 것이지만, 거기에 난(蘭)을 붙이면 그것 자체가 살아있는 예술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재도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언젠가 외국 벼룩시장에서 그림 한 점을 저렴한 가격에 사와 값이 좀 나가는 프레임(틀)에 끼웠는데, 지인이 보고는 몇 천만 원 이상 호가할 그림이라고 감탄했던 일이 있다. 종로보석상가에 있는 금이나 백화점에 있는 금이나 같은 금인데 가격차이가 나는 것은 진열과 포장을 어떻게 했느냐의 차이다.
그렇다. 같은 물건이라도 진열하기에 따라, 포장하기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인생도 그렇다. 이제 내가 ‘품위와 품격을 예절이라는 그릇에 담아라’는 말을 자주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