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79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남기는 삶!

797호 · 2015-06-05
참된 깨달음

사람은 일생동안 세권의 책을 쓴다고 합니다. 제1권은 ‘과거’라는 이름의 책인데, 이 책은 이미 집필이 완료되어 책장에 꽂혀버렸고, 제2권은 ‘현재’라는 이름의 책으로, 오늘 하루 내 모든 몸짓과 행동, 언어 하나하나가 그대로 기록되고 있으며, 제3권은 아직 쓰지 못한

‘미래’라는 이름의 책입니다.

1권이나 3권은 부록에 불과하지만, 현재라는 이름의 책인 2권에 따라 제3권 미래라는 이름의 집필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내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확실한 힘은 오늘 뿐이므로 오늘하루에 충실해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시효 지난 수표요, 미래는 어음이며, 오늘만이 현찰처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길 것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게 주신 하루하루가 끝나는 날, 내 인생의 마지막 평가는 ‘무엇을 남겼는가’로 결정됩니다. 가난해도, 연약해도, 질병으로 인해 아파도, 사업 실패로 인해 큰 손실이 왔어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기는 삶’을 살 수 있다면요. 다윗은 일생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상황과 연약함 속에서 찬양 시 ‘시편’을 남겼고,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최고의 부를 누린 솔로몬은 참회록 ‘전도서’를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현재라는 이름의 책에 지금 무엇을 쓰고 계십니까? 찬양시입니까? 참회록입니까?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승리하는 삶

세상을 바꾸는 힘, 혁신!

우리가 간편하게 먹는 샌드위치가 건물 7층에 있다면 이용하시겠습니까? 아마 다들 손사래를 치며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1층에 위치한 샌드위치 가게를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인산인해로 몰려드는 7층에 위치한 샌드위치 가게가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재플슈츠(Jafflechutes)’라는 샌드위치 가게인데, 재플은 ‘샌드위치’, 슈츠는 ‘낙하산’을 뜻합니다. 이름하여 ‘낙하산 샌드위치’! 샌드위치 가게가 있는 골목 ‘X’표시가 있는 곳에 서 있으면, 주인은 7층 높이에서 샌드위치를 낙하산으로 날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샌드위치를 받는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경험입니다.

이 가게가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간판도, 의자도, 테이블도, 주문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결제를 하고 자기가 받고 싶은 시간을 예약한 후, ‘X’표시에 서있으면 본인이 시킨 샌드위치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골목 어딘가에 편하게 앉아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이 골목전체가 샌드위치 가게의 매장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색다른 아이디어 때문에 샌드위치가 떨어지는 이 골목에는 늘 사람들로 가득하고 하늘에서 샌드위치가 떨어질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지난 3월 이초석 목사님께서는 ‘개혁과 혁신은 동일하다’고 설교하시며, 혁신(革新)의 ‘혁’자는 가죽 ‘혁’자로 가죽을 벗기는 대변혁이라고 하셨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동식물도 새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우리도 영·혼·육의 묵은 때(고착된 사고와 안일한 생각, 잘못된 습관)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층이라는 단점을, 7층이라는 장점으로 바꾼 ‘재플슈츠’의 ‘낙하산 샌드위치’처럼 ‘혁신’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닌 혁신입니다!

송 현 혜

charisma0691@hanmail.net

겨자씨만한 믿음

갑질사회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갑질’은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고 일상까지 침투해있다.

얼마 전, 어떤 재벌 자녀가 ‘갑질’한 사건인 땅콩회항은 그 재벌 자녀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렇게 배우지 못한 재벌들이 하는 갑질은 2세, 3세에 이르기까지 대물림되는 듯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러한 ‘갑질’은 재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학교에서는 선생과 학생 사이에서, 집에서는 부부사이에서, 그리고 애인사이에서도 ‘갑질’은 일어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열등감이라는 죄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갑질’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남보다 훌륭하고 우월한 사람임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한편, ‘갑질’을 당한 ‘을’은 을 나름대로 병에게 또 ‘을질’을 한다. 백화점 모녀, 음식점 진상 등 우리 사회에서는 억압받은 자가 자기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당한대로 갚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복된 ‘갑질’과 ‘을질’이 모여 겹겹이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살기 팍팍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에 타인의 아픔을 외면한 것이 ‘갑질’의 원인이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갑질’하고, 못 가진 자가 더 못 가진 자에게 ‘갑질’하는 굴종적인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는 우리들끼리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사랑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사탄의 전략이다.

사람은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사탄의 궤계를 이길 수 없다. 우리 안의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가 자기 힘으로 안 되면 부모를 찾듯, 우리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깨닫고 예수님께 기도함으로써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롬8:3). 가장 높은 자로서 가장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갑질이 아닌 배려와 사랑의 사회가 될 것이다.

나는 갑질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라.

김성일

cre8tor@naver.com

79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성경에서 배운다
객원컬럼
Edu S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