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100℃라야 끓는다 (요2:1~11)
물은 100도에서 끓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과학 선생님께 배운 기본 지식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은 팔팔 끓기 전까진 별다른 변화가 관찰되지 않다가 100도에 이르면 기포와 함께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액체에서 기체로 크게 변화되는 지점이 바로 임계점이라고 하는데, 물의 임계점이 100도인 셈입니다.
신앙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첫 기사의 현장인 가나의 혼인 잔치집이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와 함께 이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그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저 분이 뭐라 말씀하시든 그대로 하라’고 명합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인들이 아구까지 물을 채운 후 연회장에 내어가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어 잔치가 더욱 흥겨워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 우리 믿음의 임계점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가 아구까지 차야 응답이 온다는 것이고, 아구까지 채우는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가끔 성도님들 중에 자기는 기도를 하는데 응답이 안 온다며 ‘기도해봤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분의 기도가 임계점까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도 99도까지는 끓지 않듯,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응답이 없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 하나님께 인사나 하는 정도의 기도, 했다 안했다 하는 들쑥날쑥 기도로는 임계점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야 기도가 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이 끓으면 거품 같은 것이 뜨지 않습니까? 기도의 임계점을 넘어야 더러운 것들, 곧 악한 것들이 빠져나가고 하나님과 교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을 끓일 때 불을 켰다 컸다 해보세요. 절대 물이 안 끓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의 임계점에 빨리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무슨 말씀인가 하면, 센 불로 끓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나왔는데, 변심한 바로가 군사를 보내어 바로 추격해왔습니다. 설상가상, 앞에는 홍해로 가로막혀있었습니다. 이제 다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불평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실 테니 걱정 말라’ 하고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목이 터져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출14:15)라고 하시고는 홍해를 가르셨고, 애굽 군대는 수몰시키셨습니다.
르호보암의 손자로 유대의 6대왕인 아사왕의 이야기입니다. 아사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여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 백만의 구스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아사의 군대는 겨우 삼심 만 정도인데 말입니다. 그 때 아사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대하14:11).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스 군대를 멸하셨습니다.
주부님들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빨리 끓이려면 센 불이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기도의 임계점에 다다르는 길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에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 점령한 성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엿새 동안은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며 나팔을 불고 고함을 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리고성이 무너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이레째 여섯 바퀴를 다 돌았건만 성은 그대로였습니다. 이제 겨우 한 바퀴 남았으니 금이라도 가야 믿을 수 있는데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일곱 바퀴째 성을 돌고 소리를 지를 때 그 성은 무너졌습니다. 믿음의 임계점을 넘은 것입니다. 99도에서는 물이 안 끓는다는 겁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도 할까요? 그는 포로로 잡혀온 여종으로부터 사마리아의 선지자가 문둥병을 고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아람 왕의 소개장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을 방문합니다(왕하5:2~6). 나아만 장군을 맞은 이스라엘 왕은 이를 정치적 의도를 가진 방문으로 여겨 옷을 찢으며 걱정을 합니다. 이런 내막을 들은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사자를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합니다. 이 말에 나아만 장군은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러나 몸종의 권면에 나아만 장군은 자존심을 버리고 요단강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섯 번 들어갔다 나오면 허물이라도 벗겨졌어야 옳습니다만 그의 문둥병은 여전했습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일곱 번째 물에 들어갔다 나오니 몸이 어린 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왕하5:1~14). 임계점이 넘으면 더러운 것이 위에 뜨듯 그제야 나아만 장군의 불신도 사라졌습니다.
순종의 임계점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주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 아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나 신앙에 이런 임계점을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학교에서도 커트라인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 커트라인을 통과해야 진학을 할 수 있고, 진급을 할 수 있습니다. 커트라인을 만든 것은 떨어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만큼은 공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당신 스스로 법을 만드시고, 그 법에 의해 일을 진행하시는데, 그 분은 우리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정도로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흔들리지 않고 천국에 이를 만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셔서 신앙의 임계점을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많은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해가 무엇입니까? 오해(誤解)란 잘못 풀었다는 뜻입니다. 곧 이는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착각(錯覺)은 오해와 동색으로 실제와 다르게 느끼고 지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안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미워하신다, 심지어 하나님은 능력이 없다’ 이렇게 오해하는 자들이 많은데, 아닙니다. 신앙의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당신 책임이지 하나님은 여전히 전지전능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온도계, 시계바늘 같은 분입니다. 정확무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 회개해야 천국에 간다, 심은 대로 거둔다’ 등 임계점을 두고 임계점이 넘을 때 응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지금 응답이 안 와서 낙담하고 있습니까? 아직 98도라서 그런 겁니다. 2도만 높이면 됩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도 임계점은 있습니다. 바로 성공의 임계점입니다. ‘1만 시간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선 전문적 훈련을 1만 시간 거쳐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물이 100도가 돼야 끓듯, 훈련이 1만 시간을 넘어야 비로소 재능이 꽃을 피운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싶다면 성공의 임계점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겨 스케이트로 세계 최고가 된 김연아 선수의 노력과 훈련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노력하는데 게으르지 맙시다.
할렐루야!
99도까지도
물은 끓지 않는다
믿음에도
커트라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