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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힘

793호 · 2015-05-08
To be Succeed

각종 자격증과 시험 성적, 학벌이 중요시되던 예전과는 달리 오늘날 취업과 승진의 문턱을 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할 능력 중의 하나가 발표 능력, 즉 프리젠테이션 능력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말하기 능력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선진국 그룹인 G8 국가들에서는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독서와 토론 교육에 중점을 두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대개는 막힘없이, 끊김 없이 청산유수로 말할 때 ‘그 사람 말 잘한다’ 라고 얘기하지만 단지 그것에만 국한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됨됨이를 짐작하게 하고 그가 가진 지식과 통찰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며, 이 모든 것이 모여 결과적으로 인간관계를 열고 닫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얼마만큼 대화와 소통에 능한지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개그맨 유재석 씨는 말 잘하는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말 잘하는 이로 인정받는 주된 이유는 바로 ‘경청 능력’이다. 그는 대화할 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단지 상대방과 눈을 맞추어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며, 맞장구 쳐줄 뿐이다. 상대를 향한 진심어린 관심,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 성실한 열의와 공감하는 제스처만으로도 그와 함께 대화하는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귀는 두 개요 입이 하나인 것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을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유럽에서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이룩한 칭기즈칸을 보라. 역사의 일부를 굵직하게 수놓은 그는 놀랍게도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런 그가 “내 귀가 나의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자신이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측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심사숙고하여 순간순간 최선의 결정을 했고, 나아가 그것이 최고의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조직에서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 직원들과 소통할 때 ‘듣는 것에서 시작하여 듣는 것으로 끝내라’고 말할 만큼 많이 듣고 적게, 그리고 짧게 말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하면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직원들은 리더를 존경하며 나아가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유재석씨 성공 요인의 마무리 투수는 바로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엿보이는 ‘진정성과 겸손함’이다. 동료 연예인들에 의하면 9년간의 무명 생활을 겪은 그는 스타가 된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하기 위해 매우 힘쓰며, ‘귀를 훔치지 말고 가슴을 흔드는 말을 하라’고 자기 자신과 약속할 만큼 진솔하기 위해 철저히 애쓴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속한 조직에서 존경받는 리더,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열린 귀와 품는 마음, 그리고 진실한 언어로 상대방을 얼마나 감동시키고 나의 가치를 한층 빛나게 하며, 나아가 세상을 이끄는 힘이 되는 것을 깨달아 실천하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15:23).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겨자씨만한 믿음

세상이 아닌 믿음으로!

모 기업 회장이 정치권 로비 리스트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생전에 국회의원도 했었고 수많은 정치권 인사들과 교분을 맺어왔다. 그는 자살하기 전 녹취록에서 기업인이니까 정치인 후원이나 정치적인 보험을 든다는 차원에서, 또는 성의 표시 차원에서 뇌물을 주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정치적인 공세로 수세에 몰리자 뇌물을 줬었던 권력자들로부터 버림받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 같이 잘되어 보자며 그가 후원한 ‘성의’가 무색하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외면당했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권력자들에게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었을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의보다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마6:33~34). 그는 스스로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방법을 사용했고, 끝까지 자신의 야망을 버리지 못했기에 끝이 좋지 못했다. 각자의 의는 서로 달라서 충돌하기 마련이라 어찌 보면 버림받은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완전한 판단을 하심(시9:8)으로 하나님의 의를 좇으면 생명을 얻는다.

세상적인 삶은 스스로를 채우려 발버둥치는 삶, 신자들의 삶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기는 삶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배웠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삼상2:1~10)만이 믿음과 맡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만 주심을 믿고, 자신의 판단이나 의를 먼저 세우기 이전에 기도와 수용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상의 방식은 버리고 말이다.

김성일

cre8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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